2018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 20주기 추모행사에서 "훌륭한 경영자는 사후에도 회사가 잘 되도록 준비한 경영자"라고 말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 문장은 SK그룹의 부자 경영 서사를 다시 꺼내게 한다.
올해 SK그룹은 창립 73주년을 맞아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을 인공지능(AI) 영상으로 재현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1층 미디어월에 공개된 5분 분량 영상은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1953년 다시 세우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창업세대의 메시지를 AI 기술로 다시 구성원 앞에 세운 장면이었다. 이른바 'Back to Basic'이었다.
최 선대회장이 SK에 남긴 것은 회고담이 아니라 경영 시스템이었다. 1979년 정립된 SKMS(SK Management System)는 SK그룹의 경영관리체계로 자리 잡았다. 주력 사업이 섬유에서 에너지, 이동통신, 반도체로 확장되는 동안에도 SKMS는 그룹의 판단 기준으로 남았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 / 사진 제공=SK그룹
SKMS는 기업이 무엇을 지향하고, 구성원이 어떤 기준으로 일해야 하는지를 담은 체계다. 당시 선경그룹의 SKMS 정립은 사내 규정 정비에 그치지 않았다. 회사를 키우는 방식과 사람을 키우는 방식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은 작업이었다.
최 선대회장의 인재 철학은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인재를 키운다"는 뜻이 재단 설립의 바탕이 됐다. 기업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과 함께 봤던 최 선대회장의 시각이 재단 설립으로 남은 것이다.
최 회장은 이 유산을 사회적 가치와 이해관계자 행복이라는 경영 언어로 바꿨다. SK가 벌어들인 경제적 가치와 별도로 기업이 사회에 만든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경영 성과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이었다. 최 선대회장이 SKMS로 사람과 시스템을 남겼다면, 최 회장은 그 기준을 고객, 주주, 사회, 비즈니스 파트너까지 넓혔다.
SKMS도 이 흐름에 맞춰 바뀌었다. SK그룹은 2020년 SKMS를 개정하며 이해관계자 범위를 고객, 주주, 사회, 비즈니스 파트너로 확장했다. 함께 추구할 이해관계자 행복을 사회적 가치로 정의하는 내용도 반영했다. 최종현 시대의 경영관리체계는 최태원 시대에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의 기준으로 다시 쓰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사진제공=SK그룹
부친의 인재 양성 철학은 학술 네트워크로도 옮겨갔다. 최 회장은 2018년 최 선대회장 20주기 행사에서 선대회장의 뜻을 기리는 학술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후 출범한 최종현학술원은 한반도 주변 지정학 리스크, 과학기술 혁신, 공급망,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같은 글로벌 현안을 다루는 지식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해외 유학 장학생과 국내외 연구자를 지원해 왔다. 최종현학술원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미중 갈등, 공급망,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룬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인재 양성에 재단을 세웠다면, 최 회장은 그 이름을 국제 현안을 다루는 학술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최 선대회장은 SKMS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남겼고,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와 최종현학술원으로 이를 이어갔다. 올해 SK가 공개한 창립 73주년 AI 영상은 이 계승 흐름을 창업세대의 장면으로 다시 불러낸 작업이었다. 영상은 1953년 다시 세운 선경직물에서 시작했다.
CHEY 최종현학술원 / 사진제공=최종현학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