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어버이날 서사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김종희 창업회장은 장남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얻었고, 같은 해 10월 한국화약을 세웠다. 부친에게는 아들이 태어난 해가 곧 회사가 시작된 해였다.
한국화약은 한화그룹의 출발점이었다. 김 창업회장은 6·25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52년 한국화약을 세우고 산업용 화약 국산화에 나섰다. 전쟁 복구와 산업화가 함께 시작되던 시기였다. 광산, 건설, 토목 현장에는 국산 화약이 필요했다.
故 김종희 한화 창업회장 / 사진제공=한화그룹
김 창업회장에게 한국화약은 화약 회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화약에서 확보한 제조 기반과 거래망은 기계, 석유화학, 금융으로 넓어졌다. 한화가 말해온 '신용과 의리'도 이 시기에 뿌리를 내렸다. 거래와 사람을 쉽게 끊지 않는 경영 방식은 이후 한화의 경영 언어로 남았다.
한국화약은 1981년 장남에게 이어졌다. 김종희 창업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김승연 회장은 29세에 한화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서른도 되기 전이었다. 부친이 세운 회사를 아들이 맡았지만, 당시 한화의 체급은 지금과 달랐다.
김 회장은 취임 뒤 부친이 남긴 화약 사업을 그룹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창업주가 전후 산업화에 필요한 화약을 국산화했다면, 김 회장은 그 기반을 화학과 에너지, 금융, 방산으로 넓혔다. 1980년대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는 석유화학 사업의 축을 세운 장면이었다. 이후 금융, 유통, 레저, 태양광으로 사업 영역이 넓어졌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 사진제공=한화이글스
확장은 단순한 업종 추가에 그치지 않았다. 대한생명 인수는 한화생명으로 이어지며 금융 계열의 중심이 됐다. 삼성 방산·석유화학 계열사 인수는 방산 사업의 체급을 바꿨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에는 한화오션이 그룹의 해양 방산과 조선 사업을 맡았다. 창업주의 화약 사업은 김 회장 체제에서 우주·방산·조선까지 이어졌다.
김 회장의 경영에는 '의리'라는 단어가 자주 따라붙었다. 한화는 외환위기 당시 계열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고용 승계를 중시한 사례를 그룹의 주요 경영 장면으로 설명해 왔다.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피인수 회사 임직원의 고용 안정과 조직 통합을 강조했다. 한화는 이 장면들을 '신용과 의리'가 경영 현장에서 작동한 사례로 설명해 왔다. 김 회장은 아버지 김 창업회장의 '신용과 의리'를 그대로 이어나갔다.
김 창업회장을 기리는 자리에는 김 회장과 세 아들도 함께 섰다. 2022년 열린 창업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는 김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이 참석했다.
현암 김종희 회장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 때 모습. 왼쪽부터 김동선 부사장, 김동원 사장, 김승연 회장, 김동관 부회장 / 사진제공=한화그룹
어버이날에 한화의 역사를 보면 한 아버지와 한 아들의 시간이 먼저 잡힌다. 김종희 창업회장이 세운 한국화약은 1981년 김승연 회장에게 이어졌다. 한화는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 자산총액이 149조6050억원으로 불어나 재계 5위에 올랐다. 김 회장 취임 당시인 1981년 총자산 7548억원과 비교하면 약 198배 규모다. 그룹 매출총액도 최근 집계 기준 80조원대로 커졌다.
1952년 같은 해에 시작된 아들과 회사의 시간은 한화그룹의 '신용과 의리'라는 경영 언어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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