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에 따른 성격이나 별자리 운세, 혹은 'B형은 모기에 잘 물린다'는 식의 이야기는 흔한 대화 소재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혈액형이 정말 우리 삶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 최근 의학계에서는 단순한 속설을 넘어 ABO 혈액형이 다양한 질병의 발생 위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됐다.
중국 연구팀은 최근 'BMC 메디신(BMC Medicine)'에 혈액형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우산형 리뷰(Umbrella Review)' 결과를 공개했다. 이는 기존의 수많은 메타 분석과 체계적 문헌 고찰을 다시 한번 엄격한 잣대로 검토하는 최상위 등급의 증거 기반 연구다. 연구팀은 2024년 2월까지 발표된 51편의 고품질 문헌을 전수 조사해 270가지의 '혈액형-건강' 관련성을 분석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gettyimagesBank
분석 결과는 흥미롭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혈액형 건강론 중 과학적으로 가장 확실한 증거(Class I)를 얻은 항목은 단 하나였다.
바로 'B형 혈액형은 2형 당뇨병 위험이 더 높다'는 사실이다. 약 7000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비슷한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들 중 B형은 다른 혈액형(A, O, AB)보다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평균 28% 높았다. 이는 유전적으로 인슐린 감수성에 영향을 주거나 장내 미생물 구성, 체내 염증 수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뇌혈관 질환과 인지 기능 분야에서는 O형이 유전적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롤로지(Neurology)'에 게재된 전 세계 48개 연구 결과에 따르면 O형은 60세 미만에 발생하는 '조기 허혈성 뇌졸중(뇌경색)'의 천연 보호막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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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ABO 혈액형 유전자가 젊은 층 뇌경색의 가장 핵심적인 유전적 요인임을 밝혀냈다. 특히 A형은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반면 O형은 위험도를 눈에 띄게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O형의 이점은 노년기 인지 기능에서도 드러난다. O형은 비O형(A, B, AB)에 비해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감퇴하거나 인지 장애를 겪을 확률이 낮다.
전문가들은 혈액 응고와 관련된 '제8응고인자' 수치가 비O형에서 천생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피가 더 잘 굳는 성질 때문에 뇌의 미세 혈관이 막히기 쉽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인지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도 A형과 비O형은 정맥혈전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고, O형은 출혈 위험이 다소 높다는 결과가 '높은 수준의 증거'로 분류됐다.
다만 이번 연구는 특정 혈액형이 반드시 질병에 걸린다는 선고가 아니라 상대적인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혈액형은 바꿀 수 없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취약점을 미리 알고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예방에 나선다면 질병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