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얼음정수기를 출시한 생활가전 기업 청호나이스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등장했다.
한때 국내 정수기 렌털 시장에서 코웨이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던 기업이 매각 대상으로 나오게 된 배경에는 시장 경쟁력 약화와 상속세 부담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겹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3년 설립 이후 필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궤도에 오른 청호나이스는 2003년 세계 최초로 얼음정수기를 출시하며 프리미엄 정수기 시장을 개척했다.
이후 코웨이와 함께 국내 정수기 시장을 양분하는 핵심 사업자로 자리잡았으나, 상황은 시장 환경이 변하면서 달라졌다.
청호나이스
물탱크가 없는 직수형 정수기가 주류로 떠오르고, LG전자, 쿠쿠홈시스, SK매직 등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청호나이스는 기존 RO(역삼투압) 방식 중심 전략에서 빠르게 전환하지 못했고, 그 결과 점유율은 한때 2위에서 5위 수준까지 하락했다.
시장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 지난해 6월 창업주인 故정휘동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회사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
유족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2000억~3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기업 가치와 별개로 실제 보유한 현금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실효세율은 60%로,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에 청호나이스와 같은 상황에 놓인 기업들은 경영을 유지하기보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회사를 넘겨 현금을 확보하는 방안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이러한 흐름은 청호나이스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유사한 사례가 반복돼 왔다.
가구업체 '한샘'은 승계 부담 속에서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했고, 종자 기업 '농우바이오'는 창업주 사망 이후 상속세 부담으로 회사를 넘겼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였던 '쓰리쎄븐' 역시 상속세 문제를 감당하지 못해 매각됐다.
이들 사례는 공통적으로 '창업주 중심 지배구조 → 갑작스러운 상속 → 높은 세금 → 현금 부족 → 기업 매각'이라는 흐름을 보인다.
특히 사전 증여나 승계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사망할 경우, 상속세 부담이 한꺼번에 발생하며 기업 운영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결국 투자와 사업 확장에 사용돼야 할 자원이 세금 재원 마련으로 전환되면서, 성장 전략보다 매각이 우선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는 높은 상속세 구조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패턴으로 평가되는데,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경우 기업 매각이 늘어나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외국 자본에 넘어가다보면 장기적으로 산업 주도권이 약화되고 핵심 산업의 외국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현행 상속세 체계가 유지될 경우, 유사한 사례는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을 승계하기보다 매각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는 구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물론 외국 자본으로의 매각이 항상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우아한형제들가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된 사례나, OB맥주가 AB InBev로 편입된 사례처럼 글로벌 자본과 결합해 성장 기회를 확보한 경우도 존재한다.
다만 청호나이스, 농우바이오, 쓰리쎄븐의 경우는 결이 다르다. 이들은 전략적 성장보다는 상속세 부담이라는 외부 요인이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사례로, 기업이 투자와 혁신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지분 매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청호나이스의 매각설과 관련해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을 비롯한 여러 운용사가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나, 이와 관련해 청호나이스 측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