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GTC 2026에서 꺼낸 메시지는 HBM 같은 AI 메모리 제품 그 자체보다, 그 제품을 어떻게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것인가에 가까웠다. 시장의 시선은 그동안 HBM3E와 HBM4, 엔비디아 공급망, 차세대 AI 메모리 주도권에 쏠려 있었지만, 회사가 이번 글로벌 무대에서 전면에 내세운 것은 '공장 운영 방식'의 변화였다.
18일(한국 시간) 도승용 SK하이닉스 DT 담당 부사장은 GTC 2026 패널 토론 'Building the Future of Manufacturing'에서 AI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생산능력은 같은 속도로 따라가기 어렵다고 짚었다. 신규 팹을 더 짓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기존 라인의 생산성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HBM처럼 고부가가치·고난도 제품 비중이 커질수록 팹 운영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품질과 비용, 속도를 함께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의 경험과 규칙 기반 자동화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드러났다.
SK하이닉스가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2030년 자율형 팹이다. 회사는 이를 오퍼레이셔널 AI, 피지컬 AI, 디지털 트윈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오퍼레이셔널 AI는 공장의 두뇌 역할을 맡아 엔지니어의 판단과 노하우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으로 전환한다. 피지컬 AI는 이송 시스템과 로봇, 물류 체계를 더 정교하게 움직이는 실행 역할을 맡는다.
디지털 트윈은 실제 팹을 가상 공간에 구현해 생산 흐름과 자재 이동, 레이아웃 변경 등을 사전에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SK하이닉스가 GTC에서 엔비디아와의 협업을 함께 부각한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AI 메모리 시장이 커질수록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도 달라진다. 얼마나 많이 짓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제품을 전환하고 안정적으로 양산하며 고객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해진다. 같은 장비를 들여오는 것과 같은 운영 체계를 갖추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정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는 시간이 쌓일수록 격차를 만든다. SK하이닉스가 이번에 자율형 팹을 앞세운 것은 그 시간의 격차를 제조 경쟁력으로 만들겠다는 뜻에 가깝다.
HBM으로 AI 메모리 시장 선두에 선 SK하이닉스로서는 이제 그 위치를 지키는 일도 경쟁이 됐다. 엔비디아와의 협력 무대에서 제품보다 공장을 이야기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자율형 팹이 실제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2030년이라는 목표 시점까지 지켜봐야 한다. 다만 엔비디아와의 협력 무대에서 제품이 아닌 공장을 앞세웠다는 것 자체가, 회사가 경쟁의 무게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도승용 SK하이닉스 DT담당 부사장 / 사진제공=SK하이닉스
사진제공=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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