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운영 중인 중국 점포는 없습니다"
롯데그룹 2025년 사업보고서에 담긴 이 한 문장은 롯데가 지난 7년 동안 겪은 변화를 압축해 보여준다. 한때 중국 유통 확장의 상징으로 불렸던 롯데는 이제 중국 점포를 모두 정리했고, 그 빈자리를 동남아와 신사업으로 메우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이 변화는 최근 숫자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롯데쇼핑은 2025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5470억원으로 전년보다 15.6% 늘었고, 당기순이익 736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부채비율도 4.2%p 낮아졌다. 실적만 놓고 보면 완전한 회복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중국 철수 이후 이어진 사업 재편의 방향이 재무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출발점은 중국 사업 철수였다. 롯데는 사드(THHAD) 사태 이후 중국 현지에서 영업정지와 불매운동, 점포 폐쇄 압박을 연이어 겪었고 결국 유통 사업에서 철수 수순을 밟았다. 한때 100곳이 넘던 중국 내 롯데의 마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롯데는 중국을 대체할 새 거점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더 힘을 싣기 시작했다.
그 사이 외부 변수도 이어졌다. 2019년 일본 불매운동은 롯데리아, 세븐일레븐, 롯데시네마 등 소비재·서비스 계열사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2020년 코로나19는 오프라인 유통과 식품, 영화 사업 전반을 동시에 흔들었다.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자금 시장 경색은 롯데건설을 비롯한 그룹 전반의 재무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롯데가 최근 몇 년간 겪은 변화는 단순한 업황 부진이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 환경 변화에 가까웠다.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베트남이다. 롯데쇼핑은 2023년 9월 베트남 하노이 떠이호 지구에 복합단지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열었다. 부지면적 7만 3천㎡, 연면적 35만 4천㎡ 규모로 쇼핑몰과 마트, 아쿠아리움, 호텔, 오피스가 결합된 대형 복합 개발 프로젝트다. 롯데는 이미 베트남에서 할인점 15개점, 영화관 45개관을 운영해온 외국계 유통사다. 웨스트레이크는 단순 점포 확장을 넘어 롯데가 베트남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감을 키울지를 보여주는 거점에 가깝다.
사업보고서도 이를 확인해준다. 롯데쇼핑은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의 지속적인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고 영업적자 또한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아직 흑자를 말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중국 철수 이후 동남아 중심 재편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적 개선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하노이와 호치민의 2선 도시 추가 출점도 검토 중이다.
식품 계열사들의 해외 확장도 눈에 띈다. 롯데웰푸드는 2025년 연결 기준 순매출 4조 2160억원, 영업이익 1095억원을 기록했다. 실적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생산과 판매의 지리적 확장이 더 눈에 띈다. 인도에서는 2017년 인수한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브모어가 현지 공장에서 연간 2069억원어치를 생산하고 있고, 러시아 공장도 2025년 연간 990억원 규모로 가동됐다. 국내 제과사가 해외 생산기지를 기반으로 외형을 넓히는 구조가 점차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인사이트
롯데칠성음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2024년 영업이익 1849억원, 2025년 1672억원을 기록하며 그룹 내 방어력 있는 포트폴리오 역할을 했다. 필리핀 자회사 PCPPI는 2025년 매출 1조 765억원을 올렸고, 소주 수출도 미국과 유럽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시기, 식품과 음료가 해외에서 버텨낸 점은 롯데의 체질 변화를 상징한다.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도 병행됐다. 롯데그룹은 최근 3년 동안 비상장 계열사를 87개에서 78개로 줄였다. 중국과 동남아 유통 법인 20여 개를 정리했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청산하거나 매각했다.
반면 미래 성장축으로 점찍은 곳에는 투자가 이어졌다. 2022년 뉴욕 의약품 공장 인수로 출범한 롯데바이오로직스에는 2025년 4월과 5월 두 차례 유상증자만으로 약 1680억원이 투입됐다. 여기에 지난해 연말 약 2천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자금이 바이오로직스 추가 투자에 쓰일 예정인 것으로 공지됐다
주주환원 정책도 달라졌다. 롯데지주는 2025년 6월 보통주 524만주를 소각했고, 2026년 3월 31일 추가 소각도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2024년 11월 발표한 3개년 주주환원 계획에서 제시한 '주주환원율 35% 이상' 목표를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 병행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실적 회복, 자산 재편, 주주환원 강화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최근 흐름은 이전과 결이 다르다.
물론 롯데의 회복을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롯데케미칼의 구조조정은 현재진행형이고, 해외 사업 역시 지역별 수익성 검증이 더 필요하다.
롯데월드타워 / 뉴스1
중국 철수 이후 롯데는 사업 축을 동남아와 글로벌 식품, 신사업으로 옮기는 재편 작업을 이어왔고, 그 방향이 롯데쇼핑의 흑자 전환과 베트남 거점 성과, 해외 식품·음료 확장으로 일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운영 중인 중국 점포는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철수의 기록인지, 이동의 출발점인지는 앞으로의 숫자가 답할 것이다.
베트남 하노이에 자리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전경 / 사진제공=롯데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