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8일(수)

기술의 시선을 되묻다... LG 구겐하임 어워드, 트레버 페글렌 선정

LG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New York)은 2026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미디어 아티스트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 미국, 1974년생)을 선정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LG와 구겐하임 미술관이 함께 운영하는 'LG 구겐하임 아트 & 테크 파트너십(LG Guggenheim Art and Technology Initiative)'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기술을 매개로 새로운 창의적 혁신을 이끌어낸 예술가에게 상금 10만 달러와 트로피를 수여하며, 동시대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을 지원하고 있다.


트레버 페글렌은 AI와 디지털 기술이 작동하는 권력 구조와 감시 체계를 사진, 영상, 조형물 등 다양한 매체로 시각화해 온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다. 기술이 사람과 사회를 어떻게 분류하고 인식하며 통제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 온 작업을 통해, 동시대 예술과 기술 담론을 이끄는 대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1] 2026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_©Trevor Paglen(사진_ Michael Avedon).jpg트레버 페글렌 / 사진제공=LG


대표작 '이미지넷의 얼굴들(Faces of ImageNet, 2022)'은 AI가 얼굴을 분류하는 방식을 관객 참여형 형식으로 드러내며, 알고리즘이 학습한 편향과 차별의 문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관객이 카메라 앞에 서면 AI가 해당 인물을 어떤 범주로 분류하는지 실시간으로 제시한다. 또 다른 작품 '사이트 머신(Sight Machine, 2017)'은 현악 사중주 공연을 AI의 시선으로 재구성해 기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고 활용되는지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틀이 달라질 수 있음을 환기한다.


페글렌은 군사시설과 감시 시스템을 다룬 사진 작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전쟁과 감시에 사용되는 인공위성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군사적·상업적·과학적 기능이 없는 위성 '궤도반사경(Orbital Reflector, 2018)'을 제작해 실제 우주로 쏘아 올린 작업은 그의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보이지 않는 기술 권력과 정치적 구조를 예술의 언어로 드러내 왔다는 평가다.


이번 수상에 앞서 페글렌은 2017년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에 선정됐고, 2018년에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 국제 심사단은 "트레버 페글렌은 기술을 둘러싼 권력 구조와 상호작용을 깊이 있게 질문해 온 작가"라며 "특히 거대언어모델(LLM)과 현대 AI 시스템의 등장 이후,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더욱 확장해 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술에 대한 비판적 탐구와 공적 책임, 윤리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환기하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국제적 위상을 갖춘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작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단은 매년 새롭게 꾸려지며, LG의 관여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올해 심사단은 8주간의 심층 심의를 거쳐 24명의 후보를 추린 뒤 최종 심의를 통해 트레버 페글렌을 수상자로 확정했다.


[사진2] 트레버 페글렌 작가의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 '이미지넷의 얼굴들(Faces of ImageNet, 2022)'_©Trevor Paglen.jpg사진제공=LG


올해 심사에는 마미 카타오카 도쿄 모리미술관장, 멜라니 렌즈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디지털 아트 큐레이터, 라샤 살티 큐레이터 겸 작가, 에우제니오 비올라 보고타 현대미술관 예술감독, 노암 시걸 뉴욕 구겐하임 아트 & 테크 큐레이터가 참여했다.


트레버 페글렌은 "이미지와 알고리즘, 기술 인프라는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 역사를 형성하는 능동적 참여자가 됐다"며 "기술과 예술의 교차점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을 지지해 준 LG와 구겐하임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나오미 벡위스(Naomi Beckwith) 구겐하임 수석 큐레이터는 "페글렌은 보이지 않는 기술 시스템의 구조를 예술로 드러내며, 우리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또 다른 변화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고 말했다.


트레버 페글렌은 역대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들과 한국 작가들과도 여러 전시에서 호흡을 맞추며 동시대 기술 담론을 확장해 왔다.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는 지난해 수상자인 김아영 작가를 비롯해 LG와 협업한 추수 작가 등과 함께 AI가 사회와 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2020년 샌프란시스코 드 영(de Young) 미술관에서는 초대 수상자 스테파니 딘킨스(Stephanie Dinkins)와,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2대 수상자 슈리칭(Shu Lea Cheang), 김아영 작가와 함께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했다.


이번 수상은 LG가 추구해 온 '책임 있는 AI'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LG는 유네스코 AI 윤리 권고 이행 현황을 공개하고, 매년 'AI 윤리 책무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기술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대외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 엑사원(EXAONE) 개발 과정에도 AI 위험 분류 체계를 적용해 검증하고 있다.


[사진3] 트레버 페글렌 작가의 영상과 퍼포먼스 작품 '사이트 머신(Sight Machine,2017)' ©Trevor Paglen.jpg사진제공=LG


LG 관계자는 "트레버 페글렌의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LG가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며 "LG는 투명성, 책임성, 인간 중심적 활용이 AI 혁신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수상이 인간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AI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LG의 의지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LG는 오는 5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리는 수상자 축하 행사에서도 OLED 기술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통해 창작자의 의도가 보다 정교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LG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아트 & 테크 분야의 학술적 기반을 넓히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2023년부터 파트너십 전담 전문 학예 연구 큐레이터 포지션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 자리에 선임된 노암 시걸(Noam Segal) 박사는 전시 기획과 작가 발굴 등을 통해 국제 예술계의 아트 & 테크 담론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