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7일(금)

LS일렉트릭 '북미 1조' 그 후... 매출 숫자보다 '거래 구조'가 무서운 이유

지난해 LS일렉트릭이 북미에서 매출 1조 원을 찍었다는 소식은 시장을 충분히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얼마나 팔았느냐'가 아니라, 이제 '누구와 직접 손을 잡느냐'로 판이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전력회사(유틸리티) 뒤에 서서 제품을 밀어 넣었다면, 이제는 북미 빅테크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직거래' 시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적은 이미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습니다.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4조 9,622억 원, 영업이익 4,269억 원이라는 역대급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배경은 선명합니다. 북미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전력 시스템과 초고압 변압기 수요가 폭발했고, 공급자 우위 시장에서 돈 되는 프로젝트 위주로 골라 잡는 ‘선별 수주’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덕분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1조 원’이라는 상징적인 숫자 그 너머를 봅니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질수록 기존처럼 유틸리티를 거치는 간접 납품 방식만으로는 성장의 가속도를 붙이기 어렵다는 판단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LS일렉트릭은 북미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에 고압·저압 수배전반과 변압기를 일괄 공급하는 계약을 잇달아 따내며, 고객 접점을 ‘현장 발주처’로 직접 넓히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LS일렉트릭, LS ITC 지분 100% 인수해 DT 박차...“일감몰아주기 무관” | 아주경제LS일렉트릭 사옥 / 사진제공=LS일렉트릭


다만, 아직은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발주처와의 직접 계약 비중이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이 비중이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확인될 경우, LS일렉트릭이 공언해 온 ‘거래 구조 전환’의 신뢰도가 한층 단단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 11월, 북미 AI 빅테크 기업과 체결한 약 1,329억 원 규모의 전력 시스템 공급 계약은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중요한 실마리입니다. 저압부터 고압까지 기자재를 통째로 집어넣는 ‘풀 패키지’ 형태인 데다, 단발성 납품을 넘어 장기 공급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작년 12월 기준 데이터센터 사업 수주액이 1조 원(북미 8,000억 원 이상)을 돌파한 것도, 결국 까다로운 빅테크들이 LS의 품질과 납기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올해 초 ‘직거래 전선’을 제대로 넓히기 위해 선택한 무대가 바로 북미 최대 송배전 전시회인 ‘디스트리뷰테크(DistribuTECH) 2026’입니다. 여기서 LS일렉트릭은 AI 데이터센터 맞춤형 직류(DC) 전력기기, UL 인증 배전 솔루션, 초고압 변압기 등 북미 특화 제품을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전시 참가 자체가 단순한 홍보를 넘어 ‘고객 포트폴리오의 질’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선언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특히 DC(직류) 전환은 데이터센터 시장의 최고 민감한 키워드입니다. 전력 효율과 설치 면적, 운영 안정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력 손실을 줄이는 설계’가 곧 기업의 비용(CAPEX·OPEX)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LS일렉트릭은 일찍부터 DC 배전 기술과 검증 체계를 강조해 왔고, 실제 글로벌 업체들이 직접 국내 공장을 방문해 기술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갔을 정도입니다.


이런 직거래 확대는 북미 배전 시장 공략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초고압 변압기 시장보다 판이 훨씬 큰 배전 시장에서 ‘표준 인증(UL) + 데이터센터 특화 + 칼 같은 납기’라는 삼박자가 결합되면, 거래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데이터센터 발주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최근 ‘스마트 배전’ 솔루션을 앞세워 북미 현지 설비투자 시장과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시장을 파고드는 흐름도 같은 맥락입니다.


LS일렉트릭 청주 스마트공장 외경. /LS일렉트릭 제공LS일렉트릭 청주 스마트공장 외경 / 사진제공=LS일렉트릭


뒷받침되는 숫자들도 확실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고는 약 5조 원으로 사상 최대이며, 신규 수주 역시 3조 7,000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고 수준입니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 잔고가 2조 7,000억 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은, ‘빅테크 직거래’가 말뿐인 구호가 아니라 실제 생산과 납기 체계가 긴밀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지금의 전력기기 업황은 단기 반등이 아닌 ‘구조적 수요 국면’에 진입해 있습니다. 이제는 ‘얼마나 파느냐’보다 ‘누가 더 좋은 고객과 더 오래 거래하느냐’가 기업의 가치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됐습니다. 결국 다음 매출 1조 원의 향방은 배전 시장 확대와 하이퍼스케일 고객과의 직거래 성적표에서 갈릴 것입니다. LS일렉트릭이 전시회 전면에 DC와 UL 솔루션을 올려놓은 이유도, 이미 승부처가 숫자보다 ‘거래 구조’에 있음을 스스로 알고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