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5일(목)

기념품처럼 팔려나갔던 조선 책판... 50여 년 만에 고국 품으로

구한말 항일의병장 김도화의 문집 책판을 비롯해 미국으로 유출됐던 조선시대 문화유산이 50여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9일 미국 워싱턴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8일(현지시각) 열린 유산 기증식을 통해 조선시대 책판 3종을 기증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참석한 이번 기증식에서는 구한말 의병장 척암 김도화(1825~1912)의 '척암선생문집' 책판과 조선 후기 학자 송시열, 채제공의 문집 책판이 각각 미국인과 재미동포 소장자로부터 반환됐습니다.


0002790814_001_20260209184618863.jpg미국에서 기증받은 ‘척암선생문집’ 책판. 전면의 모습이다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이번에 기증된 책판들은 1970년대 초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구입해 가져간 것들입니다. 원래 투박한 형태의 책판 마구리를 가공된 목재로 교체하고 금속 장식을 추가하는 등 문화상품 형태로 변형된 모습이 특징적입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국내에서 도난·분실된 책판들이 기념품으로 포장돼 외국인들에게 판매된 후 해외로 반출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평가했습니다.


가장 주목받는 유물은 1917년 판각된 '척암선생문집' 책판입니다. 김도화는 1895년 을미의병항쟁 당시 일제의 명성왕후 시해에 분노해 안동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펼친 인물입니다. 원래 1천여 점이 있었던 이 책판은 국내에 19점만 남아있으며, 2015년 '한국의 유교책판'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이 책판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한국지부에서 근무했던 애런 고든(1933~2011)이 국내 골동업자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2011년 고든 사망 후 부인 탐라 고든이 2025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 기증을 문의하면서 반환이 성사됐습니다.


조선 후기 유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송자대전' 책판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 책판은 송시열의 문집과 연보를 모아 1787년 간행된 것으로, 1907년 일본군의 방화로 18세기 원본이 모두 소실된 후 1926년 후손과 유림들이 다시 제작했습니다. 재제작된 책판 1만1023점은 1989년 대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이번에 반환된 책판은 고든이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 여동생 앨리시아 고든에게 선물했던 것입니다.


0002790814_002_20260209184618895.jpg이번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세 종류의 책판들. 왼쪽부터 '송자대전' '척암선생문집' '번암집' 책판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영조와 정조 시대 국정을 주도한 번암 채제공(1720~1799)의 문집 '번암집' 책판도 기증 목록에 포함됐습니다. 1824년 새긴 이 책판은 전체 1159점 중 358점만 현존하며, '척암선생문집' 책판과 함께 2015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1970년대 초 한국 근무 미국인이 골동업자로부터 구입해 버지니아주 거주 재미동포 김은혜씨 가족에게 선물한 것으로, 김씨는 재단 미국 사무소의 기증 제안을 수락하고 8일 기증식에도 직접 참석했습니다.


국가유산청과 재단 관계자는 "과거 문화유산을 전통문화상품으로 둔갑시켜 해외로 반출한 사례들을 상당수 확인한 만큼, 관계 기관과 협력해 미국 내 추가 사례를 발굴하고 자진 반환 등 후속 조치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9일 오전 11시 30분(현지시각)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 영사부 건물에서 '대한민국 최초 대사관' 기념 동판 부착 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건물은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해외에 최초로 설치한 대사관 건물로, 신생국 한국의 외교적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유엔군 참전을 이끌어낸 '구국 외교'의 현장이기도 한 이곳은 장면 초대 대사(1949~1951)부터 제8대 김동조 대사(1967~1973)까지 역대 주미대사들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됐으며, 현재 한국 외교공관 중 가장 오랜 기간 운영되고 있습니다. 


0002790814_003_20260209184618924.jpg지난 8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열린 조선 중후기와 구한말 시기의 책판 3종 기증식의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번암집' 책판 기증자 김은혜씨(왼쪽에서 두번째)와 '척암선생문집' '송자대전' 책판 기증자 대리인 에런 팔라(맨 오른쪽)가 감사패를 들고 허민 국가유산청장(오른쪽에서 둘째)와 나란히 섰다 / 국가유산청 제공


허민 청장과 강경화 주미대사가 참석할 예정인 이번 행사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2021년), 주영대한제국공사관(2023년)에 이은 세 번째 해외 문화유산 기념 동판 부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