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0년 넘게 재단 계열사 15곳을 숨기고 이를 그룹 내 지배력 강화와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에 활용한 혐의로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첫 기업 총수 고발 사례입니다.
지난 8일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혐의로 김 회장을 고발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회장은 1999년 11월부터 동곡사회복지재단과 그 산하 회사 15곳(삼동흥산, 빌텍, 삼동랜드 등)을 그룹 소속 현황에서 누락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DB그룹 사옥 / 사진제공=DB그룹
해당 재단과 재단회사들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으로 비영리법인의 계열 편입 요건이 완화되면서 1999년 DB그룹 계열에서 제외됐습니다. 다만 공정위는 형식적인 계열 제외와 달리, 이들 회사가 실제로는 김 회장의 지배 아래 DB그룹 계열사와 다름없이 운영돼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늦어도 2010년부터 재단회사들은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와 사익 추구를 위해 활용됐고, 2016년에는 재단회사들을 관리하는 전담 직위까지 설치되며 지배력이 본격화됐습니다. 공정위는 이 같은 경영 형태를 독립적인 회사의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조사 결과 재단회사들은 DB그룹 핵심 계열사인 디비하이텍의 경영권이 흔들리거나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이른바 '해결사' 역할을 맡아왔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디비하이텍의 재무 개선을 명목으로 필요하지 않은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와 디비월드 기업회생 절차 과정에서 자금 조달과 유상증자에 동원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디비하이텍은 동일인 지분율이 23.9%로 낮아 경영권 공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구조입니다. 공정위는 총수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재단회사들에 금융 리스크가 전가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2023년 경영권 공격 국면에서도 재단회사들이 차입까지 동원해 디비아이엔씨와 디비하이텍 지분을 매입하려 했던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 / 뉴스1
김 회장 개인과 재단회사 간 직접적인 금전 거래도 드러났습니다. 김 회장은 2021년 재단회사로부터 220억원을 차입해 1년 뒤 상환했으며, 재단회사는 상환 직후 동일한 금액으로 디비하이텍 지분을 취득했습니다. 공정위는 이를 두고 재단회사들이 김 회장의 유동성 관리 수단처럼 활용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재단회사들의 매출 구조 역시 DB 계열사 의존도가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일부 재단 협력회사에는 총수 최측근이 감사로 선임됐고, 핵심 재단회사인 삼동흥산, 빌텍, 삼동랜드의 임원 과반수와 역대 대표이사 상당수는 DB 출신 인사들이었습니다.
공정위는 DB그룹이 재단회사들을 내부적으로는 계열사처럼 관리하면서도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도록 은폐하려 했던 정황도 다수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룹 조직도에서 재단회사만 점선으로 표시하고, '그룹장에게만 배포', '관계사 배포 시 동곡재단 부분 삭제' 등의 문구가 기재된 내부 자료도 확보됐습니다. 위장계열사로 인식될 가능성을 우려해 관련 리스크를 내부적으로 반복 분석한 흔적도 확인됐습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공시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김 회장 개인을 고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울러 부당지원과 사익편취 혐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별도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뉴스1
음잔디 공정위 기업집단관리과장은 "동일인 측의 지배적인 영향력 행사를 다수의 객관적 증거와 거래 관계, 구체적인 정황을 종합해 입증한 최초의 사례"라며 "재단회사들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와 사익 추구를 위해 수시로 동원됐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고발은 주병기 위원장 취임 이후 첫 총수 고발 사례입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8월 한기정 위원장 체제에서 농심 신동원 회장을 자료 허위 제출 혐의로 고발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