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표정은 분노보다는 허탈에 가깝습니다. 가격 하락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시장에서 누구도 자신들을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감각이 짙어졌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고점 대비 크게 밀렸습니다. 문제는 하락의 크기보다 구조입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공매도가 허용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하락을 고스란히 떠안습니다. 반면 해외 시장에서는 숏 포지션을 통해 하락 자체를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손실은 국내에 남고, 수익은 국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불만이 커지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과 당국의 움직임은 투자자들의 허탈감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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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과 여당은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자본시장 대체거래소(ATS)에 적용되는 지분 규제를 가상자산 거래소에도 적용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제도가 현실화될 경우 업계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 점유율 1위인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이게 됩니다.
업계가 억울해하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이번 논의가 명백한 위법 행위에 대한 사후 제재가 아니라, 이미 성장한 기업의 지배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는 점입니다. 소비자 보호와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과 달리, 기업의 성장 경로와 소유 구조를 제도가 사후적으로 재단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입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이 김병기 무소속 의원 차남의 취업 청탁 의혹과 관련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1·2위 인사들을 잇따라 소환했다는 소식은 업계의 부담을 더욱 키웠습니다. 두나무 전 대표와 빗썸 임원들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에서는 "업계가 다시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중요한 점은 업비트나 빗썸이 먼저 문제를 일으켰다는 정황은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업계 안팎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유력 정치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후 각종 문제 제기와 압박에 노출된 것처럼 보인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김병기 의원 / 뉴스1
해당 정치인은 한때 '친문'으로, 이후에는 '친명'으로 분류됐고 국정원 출신이라는 이력까지 더해진 인물입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검찰조차 신중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체급의 인사와 엮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실제로 취업 청탁을 거절한 정황 이후 국회에서 거래소 '독과점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규제 논의로까지 이어진 흐름을 두고 이런 해석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들은 스스로를 충분히 해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산업 전체가 '정치적 의혹의 무대' 위에 올려졌다는 박탈감을 호소합니다. 투자자들 역시 "하락장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는데, 산업은 정치 프레임 속에서 또 한 번 흔들린다"며 허탈해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환경에서 산업의 미래 전략까지 제약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나무가 네이버파이낸셜과 추진해온 포괄적 주식 교환은, 국내 가상자산 기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빅 딜'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대주주 지분을 20%로 제한하는 규제가 도입될 경우, 두나무가 특정 기업의 자회사가 되는 구조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정책 변수 하나로 글로벌 진출의 사다리가 접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투자자는 손실을 감내하고, 거래소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분을 보유한 주주와 오너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규제의 명분만을 앞세웁니다. 산업이 받는 충격과 투자자들의 좌절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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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런 장면을 여러 차례 반복해 왔습니다. 새로운 산업이 커질 기미를 보이면 규제가 먼저 등장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도 전에 발목부터 잡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외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면, 그제야 "왜 우리는 없느냐"고 묻습니다.
지금 가상자산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투자 실패나 일시적 조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권력이 산업을 대하는 오래된 방식이 다시 한번 드러난 장면입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투자자의 좌절도, 기업의 억울함도, 글로벌 경쟁력 상실이라는 결과도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거래소도, 투자자도 아니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늘 그렇듯, 정치가 산업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