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호텔 업계에서 욕실 문을 없애거나 간소화하는 설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투숙객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비용 절감과 공간 활용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고객 만족도 저하라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Pixabay
지난 2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 지역의 중저가 호텔 체인과 부티크 호텔들이 기존 욕실 문 설계를 대폭 변경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여닫이문을 미닫이 헛간 문이나 반투명 유리문으로 교체하거나, 욕실과 침실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는 개방형 구조를 도입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일부 객실의 경우 변기 공간만 최소한의 유리나 칸막이로 구분해 사실상 문이 없는 욕실과 다름없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투숙객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프라이버시 침해입니다. 캐나다 캘거리 공항 인근 메리어트 호텔에 머물렀던 데니스 밀라노 스프렁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불투명 문이었지만 화장실 사용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며 "결혼 25년이 됐지만 배우자의 화장실 사용 모습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스프렁은 또한 반투명 문 틈새로 새어나오는 빛과 소음으로 인해 수면에 지장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호텔들이 이러한 설계 변경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경영난과 비용 절감 압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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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대 피터 앤 스테파니 놀란 호텔경영대학의 리사 체르빈스키 강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단체 여행과 비즈니스 여행 수요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 건설비, 에너지 비용은 크게 증가했다"며 "호텔 경영진들이 욕실 문 하나도 설치와 유지 비용을 발생시키는 부담 요소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문과 문틀, 손잡이, 경첩 등의 설치비용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유지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욕실을 문과 벽으로 완전히 차단할 경우 자연광 유입이 제한되어 조명 사용량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에너지 비용과 관리 부담도 증가합니다.
여기에 미국 장애인법(ADA)에서 요구하는 넓은 출입구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추가 설계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대안으로 도입됐던 슬라이딩 문인 '포켓 도어'나 커튼의 경우 고장과 위생 문제로 인한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호텔 업계 일각에서는 욕실 개방형 구조가 공간을 더 넓고 밝게 보이게 하며 환기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을 가진 측에서는 욕실의 본질적 기능이 환기가 아닌 냄새와 소음 차단에 있다며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호텔 업계의 움직임에 맞서 소비자들의 조직적인 저항도 시작됐습니다. 디지털 마케터인 세이디 로웰은 런던 호텔 투숙 중 욕실 문이 거의 없는 구조를 경험한 후 충격을 받아 '문을 되찾자(Bring Back Doors)'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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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수백 개 호텔에 문이 완전히 닫히는지, 유리문인지 등을 묻는 설문을 발송하고 욕실 프라이버시 수준에 따라 호텔을 분류한 목록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명단에는 뉴욕, 도쿄, 멕시코시티 등 주요 도시의 500곳 이상 호텔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리어트, 하얏트 등 주요 호텔 그룹들은 WSJ의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으며, 일부 호텔만이 "기존 설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비용 절감에만 치중한 설계가 투숙 경험의 질을 떨어뜨릴 경우 장기적으로 브랜드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로웰은 "사생활은 상품화될 수 없다"며 "결국 소비자들은 욕실 문이 제대로 있는 호텔에 돈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