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청소년 범죄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절도 사건에서 70대 이상 초고령층의 비중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농촌 지역의 노년층 빈곤 문제를 넘어 서울, 부산 등 물가 상승 압박과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대도시에서도 '범죄의 노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3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71세 이상 절도범은 1만 6223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2021년 1만 1035명과 비교해 3년간 47.0% 급증한 수치입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증가 속도입니다. 통계청 주민등록인구 현황에 따르면 같은 기간 70대 이상 인구 증가율은 약 13.9%에 그쳤습니다. 고령층 인구 증가 속도보다 절도 범죄 유입 속도가 약 3배 이상 빠른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절도 범죄의 주요 비중을 차지했던 청소년층과의 통계적 차이를 크게 줄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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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20세 미만) 절도 검거 인원은 2021년 1만 4721명에서 지난해 1만 6948명으로 15.1% 증가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절도 검거 인원 증가율(15.4%)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초고령층과 청소년층 간 격차는 전국적으로 725명 차이까지 좁혀졌습니다.
전국적인 증가 추세 속에서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미 범죄의 중심축이 노년층으로 이동하는 역전 현상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의 71세 이상 절도범 검거(4170명)는 청소년(2390명)보다 1.7배 많았습니다.
부산(1.5배)과 대구(1.3배)에서도 초고령층 검거 인원이 청소년을 넘어섰습니다. 고령화가 심화된 농어촌 지역에서도 초고령층 절도 범죄의 상승 곡선은 가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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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청의 71세 이상 절도 검거는 2021년 405명에서 지난해 624명으로 54.1% 폭증했습니다.
전남청(46.9%)과 충남청(45.1%)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확인됐습니다.
치안 현장에서는 급등하는 물가와 고착화된 빈곤 문제가 초고령층을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노년층의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 수는 110만 명으로 집계돼 2020년 72만 4000명 대비 51.9% 늘었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되는 고령층 절도 사건은 대부분 생계를 위한 소액 물품에 집중돼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의 한 마트에서 78세 노인이 단팥빵 2개를 훔치다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10년 전부터 뇌경색을 앓아온 이 노인은 아내와 함께 생활고를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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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절박한 상황은 새로운 소비 환경과 결합하면서 더욱 자주 범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된 무인 상점도 노년 범죄 급증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무인 상점 절도 발생 비중은 5.9%를 기록해 대형 할인점(5.5%)을 넘어섰습니다.
서울 한 일선 파출소 근무 경찰관은 "감시하는 눈이 없다는 무인 점포의 환경적 특성이 고령 빈곤층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범죄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기계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 결제를 완료하지 않은 상태로 물건을 가져가는 '비의도적 절도'도 상당수 관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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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인구구조 변화와 고물가가 겹치면서 대도시 초고령층이 범죄의 유혹에 가장 먼저 노출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가족과 공동체라는 일차적 안전망이 해체된 자리를 취약한 공적 부조 체계가 메우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허점이 결국 고령 빈곤층을 범죄라는 막다른 길로 내모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채 의원은 "인구구조 변화 속도를 추월한 고령층 범죄 폭증은 우리 사회 안전망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라며 "단순 검거 위주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연계된 현장 밀착형 복지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