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6일(토)

"연기에 완성은 없다"... 모두를 울린 故 이순재 '백상 무대' 재조명

국민배우 이순재가 지난 25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연예계와 문화계에 깊은 슬픔이 번지고 있습니다. 


특히 고인이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보여준 전설적인 특별무대가 다시 주목받으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7일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이순재는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연극 형식의 특별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지난해 제60회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특별무대를 꾸민 이순재 / JTBC지난해 제60회백상예술대상 / JTBC


연극 오디션장을 배경으로 한 이 무대에서 그는 "늙은 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온 접수번호 1번"이라며 등장해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펼쳐냈습니다.


이순재는 자신을 "올해로 90세가 된 이순재"라고 소개하며 "1956년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시작했고, 올해로 69년 차다. (출연한) 드라마는 175편 정도, 영화 150편 정도, 연극 100편 미만"이라고 화려한 이력을 밝혔습니다.


무대에서 그는 객석의 최민식을 향해 "영화 '파묘' 잘 봤다"며 "언제 그런 작품을 같이 해봅시다. 내가 산신령을 하든 귀신 역을 하든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최민식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이순재 특별무대에 눈시울을 붉힌 배우들 / JTBC제60회백상예술대상


이병헌에게는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이순재는 "우린 액션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치고 받을 순 없고, 한국판 '대부'를 하자"며 "내가 말론 브랜도 역할을 하고, 우리 이병헌 배우가 알 파치노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제안해 장내 웃음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병헌은 눈시울을 붉히며 미소를 띤 채 박수를 보냈습니다.


본격적인 연기론이 시작되자 이순재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실렸습니다. 대본 암기의 중요성에 대해 그는 "대본 외우는 건 배우로서 기본"이라며 "배우의 생명은 암기력이 따라가느냐부터 경계선이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미안합니다. 다시 합시다'를 100번 하면 그만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대본을 완벽하게 외워야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 대사에 혼을 담아야 하는데 못 외우면 혼이 담기겠냐"며 "대사 못 외울 자신 없으면 배우 관둬야 한다. 그건 원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9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도전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이순재는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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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몸살을 앓다가도 '레디' 하면 벌떡 일어나게 되어 있다"며 "그런데 이 연기가 쉽진 않다. 평생을 했는데도 아직도 안 되고 모자란 데가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이어 "그래서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배역 나올 때마다 참고하고 그런다"며 "배우라는 역할은 항상 새로운 작품, 역할에 대해 도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후배 배우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이순재는 "그동안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 이만하면 됐다 하는 배우 수백 명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없어졌다"고 지적하며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게 이거다. 완성을 향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객석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인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에 이순재는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답한 뒤 즉석에서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연기했습니다.


짧은 연기를 마친 그는 "꼭 나 시켜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났습니다.


배우 故 이순재 / 뉴스1배우 故 이순재 / 뉴스1


이순재는 지난해 10월 건강 악화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공식 석상은 올해 1월 11일 방송된 '2024 KBS 연기대상'이었습니다. 당시 KBS 드라마 '개소리'로 대상을 받은 그는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는 "이 상은 나 개인의 상이 아니다"라며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방송 출연이 됐습니다.


뉴스1 뉴스1 


대한민국 최고령 국민배우로 활약한 이순재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습니다.


상주로는 아내 최희정 씨와 두 자녀가 이름을 올렸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으로 예정됐습니다.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에덴낙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