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토)

미국서 세상 떠나며 "고국에 묻어달라"던 독립운동가, 1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85년 만의 귀향, 독립운동가 문양목 지사 유해 고국으로


광복 80주년을 맞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안장되어 있던 독립운동가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마침내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충남 태안군은 지난 12일 환영식과 음악회에 이어 13일 지사의 고향인 남면 몽산리 생가지에서 봉환식과 추모제를 엄숙히 진행했습니다.


origin_120년만의귀향…독립지사우운문양목선생고국품으로.jpg지난 13일 남면 몽산리 우운 문양목 선생 생가에서 진행된 추모제 모습 / 태안군


우운 문양목 선생은 1869년 충남 태안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스무 살 무렵부터 국권 회복을 위한 활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907년 3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동보국회' 설립에 참여하여 회장직과 '대동공보' 주필을 맡아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는데요. 그의 애국심은 미주 한인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립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미완의 귀향 소망


문양목 지사는 1911년경 미국 정치인들과 접촉하며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origin_국외안장독립유공자유해영접식.jpg12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문양목 선생 / 뉴스1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활동하며 군인 양성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미주 한인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강연을 수없이 진행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선생은 1940년 병마와 싸우다 미국 땅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생전에 한 번도 조국의 땅을 다시 밟지 못했지만, 그의 평전에는 "내가 죽으면 내 뼈를 고국에 묻어달라"는 간절한 유언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이 한 줄의 문장이 85년이 지난 후 미국 법정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선생의 귀향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은 유해 이장 권한을 자녀에게만 인정했고, 이미 직계 자녀들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손자와 손녀는 법적으로 신청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난관 속에서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의 이수연 상임이사가 수차례 미국을 오가며 후손들을 설득했고, 최홍일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아 법정에서 싸웠습니다.


origin_독립운동가우운문양목선생120년만에고향태안에모신다.jpg12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문양목 선생 / 뉴스1


결국 재판부는 선생의 유언을 '명확한 의사 표시'로 인정했고, 마침내 귀향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운 문양목 선생의 귀향은 단순한 유해 봉환을 넘어 역사의 복원이자, 세월이 지워버린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한다는 후손과 정부, 시민이 함께 이룬 약속의 실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