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토)

16년 소송 끝에 환수한 '친일파 땅', 57만 평 중 고작 1평... 법의 허점이 만든 비극 (영상)

친일파 재산 환수의 현실


광복 80주년을 앞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재산 환수 문제는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일제의 강제병합에 큰 공을 세운 대표적 친일파 이해승의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12일 MBC의 보도에 따르면 국가가 이해승의 후손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토지를 환수하기 위해 16년간 법정 싸움을 벌였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인사이트MBC


충북 괴산의 작은 마을의 2차선 도로변, 잡초가 무성한 한 평 남짓한 땅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국가가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으로부터 되찾은 전부입니다. 4㎡, 1평이 약 3.3㎡이니, 1평이 조금 넘는 땅입니다.


겨우 몇 걸음이면 지나칠 수 있는 이 작은 땅은 밭도, 논도 아닌 도로변 자투리땅이라 경제적 가치도 거의 없습니다.


"4㎡ 되는데 이것만 나라가 찾아간 거다. 그거 찾아가면 뭐 하나. (평당) 한 15만 원 선 될 거다"라는 괴산 능현마을 정영채 이장의 말에서 허탈함이 느껴집니다.


법의 허점이 만든 아이러니


아이러니한 것은 이 '한 평짜리' 땅 바로 옆에 있는 568㎡ (약 172평) 크기의 토지 역시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 소유라는 점입니다.


같은 주인의 땅인데, 하나는 국가에 귀속되고 하나는 그대로 남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법'이었습니다.


인사이트이해승 초상 / Wikipedia


2007년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이해승이 한일 병합의 공으로 일제에 귀족 작위를 받았다며 후손의 토지를 국가로 귀속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후손 측이 제기한 1차 소송에서 법원은 "이해승은 친일 행위가 아닌 조선 왕족이란 이유로 작위를 받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토지를 모두 되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MBC에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특별히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이상한 조항을 넣는 바람에, '친일의 대가'라는 희한한 문구를 넣는 바람에 "라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법 개정을 거쳐 국가가 후손을 상대로 2차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번에는 '확정판결이 난 사안에는 개정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부칙 조항이 걸림돌이 됐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이미 이해승 관련 토지 가운데 제일 재산 가치가 많은 토지·임야는 이미 확정판결이 났기 때문에, 그건 다시 국가 귀속 결정을 못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1차 소송 당시 포함되지 않았던 토지 4㎡만 국가가 소유하게 됐을 뿐, 이미 후손 소유로 되돌려진 바로 옆 토지는 환수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지난해 12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16년간의 소송이 마무리됐고, 국가는 애초에 환수하려던 이해승 후손의 땅 190만㎡(약 57만 4,800평) 중 고작 0.0002%인 4㎡만 되찾는 데 그쳤습니다.


이 긴 소송을 지켜봐 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이성기·이용기 지사의 손자인 이석문 씨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씨는 MBC에 "(대법원 판결을) 방청석에서 들었다. 얼마나 허탈하겠나. 16년간의 지루한 싸움을 그때 그렇게 해서 끝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2010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해산 이후, 친일재산 소송 업무를 이어받은 법무부는 이 사건을 '승소' 사례로 분류했습니다.


190만㎡ 중 4㎡만 환수한 것을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광복 80주년을 앞둔 지금, 친일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입니다. 역사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우리 사회의 더 큰 관심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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