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의 정당방위, 61년 만에 인정받다
검찰이 60여년 전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씨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했습니다.
23일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 김현순)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기일에서 검찰은 최씨에게 무죄를 구형했습니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78)가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이전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에 불참했던 최씨는 이날 법정에 직접 출석했습니다. 검찰은 증거조사 후 피고인 심문을 생략하고 곧바로 구형 의견을 밝혔는데요.
검찰은 "본 사건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
검찰은 최씨의 행위가 "갑자기 가해진 성폭력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정당한 방해 행위"라고 규정하며, 이는 과하다고 할 수 없고 위법하지도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검찰은 자신들의 역할이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과거 이 사건에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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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검찰은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며 공식적으로 사죄의 뜻을 표했습니다. 이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판단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최씨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사건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검찰과 법원의 잘못으로 오판됐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변호인은 "법원이 응답할 때"라며 정당방위 인정을 거듭 주장했습니다.
최말자씨는 최후 진술에서 "국가는 1964년 생사를 넘어가는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며 "피해자 가족의 피를 토할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또한 "61년간 죄인으로 살아온 삶, 희망과 꿈이 있다면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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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61년 전 19세였던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동안 형법학 교과서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다뤄졌으며, 법원행정처가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