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4일(일)

먹을 것 훔치려던 노숙인에 희망 준 검찰·법원


검찰은 공소장 변경, 법원은 벌금형 선고…"국가 책임 외면 안 돼"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훔치려고 대학 연구실에 몰래 들어간 딱한 노숙인에게 자활의 기회를 주려고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고 법원도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하는 등 법조계의 배려가 주변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4일 서울북부지법에 따르면 노숙인 한모(30·여)씨는 지난 4월 하순 오전 1시 40분께 배가 고파 음식과 돈을 훔치러 서울 성북구 고려대의 한 연구동에 침입했지만 경비원에게 발각돼 붙잡혔다.

한씨는 어릴 적 어머니가 가출하고 이후에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노숙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마저 수년째 연락이 닿지 않아 공원 벤치와 병원 로비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이런 한씨의 딱한 사정을 접한 법원과 검찰은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그의 재활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

검찰은 애초 한씨를 야간주거침입절도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지난달 적용 혐의를 절도 미수와 건조물 침입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범행은 미수에 그쳤고 고려대 측도 합의를 해줬지만, 집행유예 기간인데다가 야간주거침입절도죄가 징역형만을 규정하고 있어 실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담당 공판부 검사는 나아가 치아 4개가 빠져 있던 한씨의 치과 치료에 나서는 한편, 추후 머물 수 있는 쉼터를 물색하는 등 재활을 위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재판을 담당했던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도 한씨에게 실형이 아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해 그가 사회의 품으로 돌아올 기회를 다시 한 번 줬다. 

무직인 한씨에게 1천만원은 큰돈이지만, 99일간 수감된 한씨의 하루 유치 환산액이 10만원으로 계산돼 실질적으로 남은 벌금은 10만원에 불과하다.

변 판사는 "주민등록마저 말소된 한씨가 재활하려면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의 따뜻한 지원이 필요했지만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국가의 책임을 외면하고 한씨에게만 책임을 물어 엄벌하는 것은 정의의 관념에 반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한씨가 생계형 범죄에 손을 댈 때까지 아무런 복지 혜택을 주지 못한 국가와 사회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변 판사는 "검찰이 재활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재범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고 보이고, 한씨 역시 재활을 다짐하고 있다는 점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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