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을 덮친 참사, 우면산 산사태의 비극
14년 전인 2011년 7월 27일 오전 8시 45분,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 폭 60m, 길이 120m 규모의 거대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평화로운 아침, 갑자기 무너져 내린 산은 1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50여 명의 부상자를 낳았습니다. 2000년대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데요.
매년 장마철 폭우와 그로 인한 침수피해가 반복될 때마다 다시금 재조명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2012년 7월, 본격적인 여름 장마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 산림조압중앙회 관계자들이 포크레인 등을 이용해 장마철 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배수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기록적인 폭우가 부른 재앙
당시 서울은 말 그대로 '물폭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사고 발생 전날부터 23시간 동안 서초구에만 392mm의 비가 쏟아졌고, 특히 산사태 직전 2시간 동안에는 164mm의 집중호우가 내렸습니다.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서울의 누적 강우량은 1751.6mm로, 100년 만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비를 견디지 못한 우면산은 결국 무너져 내렸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송동마을, 형촌마을을 비롯한 12개 지구가 토사에 파묻혔습니다.
2012년 6월, 대형 산사태 피해를 입었던 우면산의 복구공사 관계자들이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고급 빌라와 주택, 아파트들은 쑥대밭이 되었고,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널브러졌으며, 아파트 3층 높이까지 토사가 쏟아졌습니다.
남태령 전원마을에서는 주택 20가구가 매몰되고 50가구가 침수되어 6명이 사망했습니다.
또 형촌마을은 120가구 중 60가구가 토사에 갇혀 고립되었고, 이곳에서 1명이 사망했으며 방배동 래미안 아트힐 아파트 등 인근 아파트들은 지하 주차장까지 토사가 밀고 들어가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천재인가, 인재인가
우면산 산사태 이후 가장 큰 논쟁은 이 참사가 자연재해인지, 인재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처음 이 사건을 '천재(天災)'로 규정했지만,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반발로 2014년 2차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2차 조사에서 서울시는 "2010년 태풍 곤파스 피해 이후 우면산 전 지역에 안전대책이 세워졌다면 인명손실 예방과 함께 재산피해도 대폭 줄일 수 있었다"며 일부 인재임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2014년 3월, 원종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이 우면산 산사태 2차 원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산림청이 산사태 예보 발령 문자를 서초구 관련 공무원들에게 4차례나 보냈지만, 연락처 미업데이트 등의 이유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법원 역시 서울시와 서초구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2014년과 2017년 판결에서 법원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특히 2017년 서울고법은 "서초구와 국가가 4억 7767만원을 배상하라"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참사 이후의 교훈
14년이 지났지만, 우면산 산사태는 우리에게 자연재해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예방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기상현상이 증가하는 요즘, 이러한 대형 재난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연재해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철저한 대비와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면산 참사 이후 서울시는 시간당 100mm 집중호우에도 견딜 수 있도록 도시 수해 안전망을 개선하는 등 피해 예방에 힘쓰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재난 대비 시스템이 미흡하다고 지적합니다.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이 비극적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