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4일(일)

폭염 불평등, '냉방권' 사각지대 놓인 쪽방촌... 서울시가 하고 있는 노력 보니

폭염 불평등, 냉방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어컨을 켜고 시원한 실내에서 더위를 피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런 '냉방권(冷房權)'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후재난 시대, 폭염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찾아오지만 그 고통은 불평등하게 분배됩니다. 서울 도심 곳곳에 위치한 쪽방촌 주민들은 이른바 '폭염 불평등' 고통의 최전선에 놓여 있는데요.


쪽방촌은 보통 3~4㎡(약 1~1.5평) 크기의 작은 방들이 밀집해 있는 주거 형태로, 대부분 단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여름철 실내 온도가 40도를 웃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origin_쪽방촌골목의쿨링포그.jpg장마전선이 물러가고 무더위가 찾아온 2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쪽방촌 골목에 폭염 대비용 쿨링포그가 가동되고 있다. 2025.6.23/뉴스1(공동취재)


한국환경연구원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폭염 기간 중 쪽방촌 실내 온도는 외부보다 평균 2~3도 높게 나타났으며,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한 온열질환 발생 위험이 일반 주거지역보다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의 폭염 취약계층 지원 대책


서울시는 이러한 폭염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서울시는 '폭염 그늘막 2000개 확대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도심 곳곳에 그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쪽방촌이 밀집한 종로, 용산, 영등포 등의 지역에는 집중적으로 그늘막을 설치했는데요. 쿨링 포그(물안개 분사 시설) 및 쿨루프(옥상 태양광 반사 도료) 등도 함께 운영하여 도심 열기를 낮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는 '폭염 취약계층 지원사업'을 확대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이동식 에어컨과 선풍기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으로 교체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쪽방상담소와 무더위쉼터 운영


서울시는 쪽방촌 5개 지역(종로, 용산, 영등포, 동대문, 서대문)에 쪽방상담소를 운영하며 폭염 취약계층을 밀착 지원하고 있습니다.


쪽방상담소는 폭염 기간 동안 24시간 비상체계를 가동하며 독거노인과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안부 확인과 건강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쿨링포그가 가동되는 골목을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쿨링포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앉는 2층과 온도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기온은 37.1도까지 오르면서 7월 상순 기온으론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5.7.8/뉴스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쿨링포그가 가동되는 골목을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쿨링포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앉는 2층과 온도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기온은 37.1도까지 오르면서 7월 상순 기온으론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5.7.8/뉴스1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찾아가는 무더위쉼터' 서비스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해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직접 방문하여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시 인근 무더위쉼터나 병원으로 이송을 돕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쪽방촌 인근에 24시간 운영되는 무더위쉼터를 지속적으로 확대 설치하고 있으며, 올해도 더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온기창고', 쪽방촌 주민의 존엄성을 지키는 새로운 시도


서울시는 최근 쪽방촌 주민들의 생활 지원을 위한 혁신적인 시스템인 '온기창고'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3일, 영등포구 경인로 일대에 온기창고 3호점이 문을 열었는데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영옥 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최호권 영등포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소식이 진행됐습니다.


온기창고는 쪽방촌 주민들이 편리하게 생필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수요 맞춤형 물품 배분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매장에 후원받은 생필품을 진열해 놓고 쪽방주민이 배정받은 적립금 내에서 물품을 가져가는 방식인데요.


이 시스템이 도입된 후 쪽방주민들이 후원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불편함이 사라졌고, 자존감 하락, 중복 수령, 거동불편자의 어려움 등 여러 문제가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그동안 서울역 쪽방촌과 돈의동 쪽방촌에서 운영되어 온 온기창고는 이제 영등포까지 확대되어 더 많은 취약계층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영등포 온기창고 3호점에서는 특별히 '비타민 프로젝트'도 진행됩니다.


사진 제공 = 하이트진로사진 제공 =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90%가 1인 가구인 데다 취사 시설 등이 마땅치 않아 제철 식품을 섭취하기 어려운 쪽방 주민을 위해 월 1회 700명에게 7000원 상당의 신선식품 꾸러미를 전달하는 사업입니다.


또한 영등포 온기창고는 기존 물품 진열 공간에 주민휴게실을 추가하고, 샤워실과 세탁실 등 편의시설도 새롭게 설치했습니다.


기존에는 남녀공용 1개 샤워실, 샤워대 2대뿐이었으나 남녀를 분리하고 샤워대도 각 4대씩으로 늘렸으며, 세탁기와 건조기는 각 2대씩 신한은행의 후원을 받아 신규 설치했습니다.


민관 협력을 통한 폭염 대응


서울시는 공공 영역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민간 기업 및 시민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폭염 취약계층 지원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한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대형 에너지 기업들과 협력하여 쪽방촌 주민들에게 에너지 바우처를 추가 지원하고,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기창고 3호점 개소식에서도 이러한 민관 협력의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NH투자증권이 2000만원,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1000만원을 후원했으며, 하이트진로는 생수 등 폭염대응 물품, 공공형 에어컨 전기요금 지원 등 2013년부터 쪽방촌을 꾸준히 후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폭염지킴이'를 운영하여 취약계층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오전 취약가구 폭염대책 점검차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쪽방촌 골목을 방문해 쿨링포그 가동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2025.6.23/뉴스1(공동취재)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오전 취약가구 폭염대책 점검차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쪽방촌 골목을 방문해 쿨링포그 가동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2025.6.23/뉴스1(공동취재)


남아있는 과제와 향후 방향


서울시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습니다.


무엇보다 임시방편적 대책을 넘어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노후화된 쪽방촌 건물의 단열 개선, 옥상 녹화, 쿨루프(Cool Roof) 설치 등 건물 자체의 열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폭염 취약계층 지원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폭염은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닌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폭염 불평등 문제는 일시적인 복지 차원을 넘어 사회적 정의와 기후 정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서울시의 노력이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고, 정부 차원에서 더 많은 취약계층이 폭염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