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이완용 증손자, 환수 토지 되찾아 30억원에 매각 후 캐나다 이민
을사늑약을 주도한 '을사오적(乙巳五賊)' 이완용의 증손자가 정부가 환수한 증조부 명의의 토지를 되찾아 30억원에 매각한 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부동산 전문 매체 땅집고에 따르면 이완용의 증손자 이모씨는 1997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545·546·608 일대 토지 712평을 매도하고 전 재산을 정리한 뒤 한국을 떠났다.
이완용 / Wikimedia Commons
이 토지는 정부가 친일 재산으로 환수했던 것을 이씨가 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되찾은 것이다.
당시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친일파 땅이라고 해서 법률상 근거 없이 재산권을 빼앗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지를 몰수할 법률상의 근거가 없었던 만큼 토지를 되돌려 줘야 한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도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판결에 법리를 잘못 적용했거나 사실 판단을 오인한 것이 없다"며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이씨의 사례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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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재산 환수의 법적 한계와 이완용 후손의 재산 처분
이씨는 되찾은 증조부의 땅을 3.3㎡(1평)당 400만~450만원에 매각해 총 30억원의 매매대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토지는 현재 북아현2구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재개발을 통해 지하 3층~지상 29층, 28개동, 232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완용은 일제 강점기 당시 전국에 1801필지, 총 2233만4954㎡(676만8168평)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5.4배에 달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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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사위가 실제로 환수한 부동산은 1만928㎡로, 이완용이 보유했던 부동산의 0.05%에 불과했다. 이는 이완용이 해방 전에 토지 대부분을 현금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환수된 일부 토지마저 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후손들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이완용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방을 주도한 인물이다. 1910년 일제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19년 3·1 운동 진압에 협조한 대가로 후작으로 승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