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두 헌법재판관의 특별한 사연 주목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된 가운데,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을 비롯한 각 재판관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김형두 재판관은 지난해 12월 부친상을 당했음에도 정상 출근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 준비 기일을 준비하는 등 개인적인 슬픔을 제쳐두고 소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와 함께 김 재판관의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공개된 가족사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선고 한 뒤 김형두 재판관과 함께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2025.4.4/뉴스1(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23년 3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그는 자폐 아들이 있는 개인사를 공개했다. 1991년 결혼해 아들 둘을 둔 그는 둘째가 자폐성 장애 1급 진단을 받은 자폐아라고 밝혔다.
그는 "유난히도 잘 생기고 순한 아이였던 둘째가 자폐 진단을 받고 나서 우리 가족의 생활은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저희 부부는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잘 수 없고, 쉬고 싶을 때 편히 쉴 수가 없으며, 둘째랑 같이 외출을 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고단한 처지가 됐다"고 털어놨다.
2023년 3월 인사청문회 당시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 모습 / 뉴스1
이어 "제 처는 천직으로 생각하던 교사직을 포기하고 둘째 뒷바라지에 전념해야 했고, 첫째는 둘째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자폐아의 형이라는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도 제 처와 저의 몸에는 둘째로부터 꼬집히거나 물려서 생긴 상처, 그리고 흉터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재판관의 가족은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둘째를 돌봤다. 그는 "우리 둘째는 가족들에게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루 종일 둘째를 돌봐야 하는 힘겹고 고단한 생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힘겨운 삶의 경험들은 저에게 세상에는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고, 주변에 우리 가족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내 처지가 좀 어렵더라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6일 부친상을 당한 다음날 헌재에 출근한 김형두 재판관 모습 / 뉴스1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고, 법관으로서의 자세나 시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재판관은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헌법 가치를 수호하고 진정한 사회 통합을 이뤄내기 위한 중추적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면서 "만약 제게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헌법의 이념이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한편 헌법 질서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뤄나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뉴스1(사진공동취재단)
20년 넘게 이어온 아들과의 특별한 등산
한편, 김 재판관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주 둘째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있다는 일화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23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유튜브 채널 '하이머스타드'에는 '20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산을 올라 특별하고 평범한 사랑을 나누는 부자, 스물일곱 자폐 스펙트럼 아들을 둔 아빠의 담담하고 솔직한 고백'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아들과 함께 등산하는 김 재판관의 모습이 담겼다.
김 재판관은 "(아들) 행동이 잘 제어가 안 될 때가 있다"며 다른 등산객들을 터치한다거나 핸드폰을 빼앗아 만지려고 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가 있어 이로 인한 고충이 있음을 털어놨다.
2023년 3월 31일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취임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과 주변의 냉담한 시선에도 김 재판관은 아들과의 등산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등산 코스로 피해 다니며 정상도 올라가지 않았다.
이렇게 한 코스로 오래 다니다 보니 차츰 등산객들도 이들 부자를 알아보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매주 아들과 등산을 다니며 유대를 쌓는 김 재판관의 깊은 애정과 헌신의 20년 세월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전해준다.
김 재판관은 한국자폐인사랑협회가 주최하는 달리기 대회나 세계자폐인의 날 기념식 등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자폐에 대한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재판관의 일화는 개인적 아픔을 넘어 법조인으로서 더 넓은 시각과 사회의 약자에 대한 이해 등 사회적 공감으로 승화했음을 보여준다. 자폐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운 인내와 사랑,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마음과 깊은 성찰이 그의 판결문 면면에 드러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