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목)

2000명 항일투쟁 이끌다 생 마감한 '조선의 잔다르크' 김명시, 73년 만에 독립유공자 인정

인사이트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던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열린사회희망연대 제공) / 뉴스1


[인사이트] 최민서 기자 =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에서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린 김명시 장군이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지난 12일 국가보훈처는 광복 77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김명시 장군에게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기로 밝혔다.


김 장군은 경남 마산 출신으로 19세 때 모스크바 공산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일제의 민주 침략이 다가오던 1930년에는 하얼빈 일본 영사관 공격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1932년엔 귀국해 활동하다 붙잡혀 7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인사이트사진=인사이트


1939년 신의주 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한 이후 중국으로 가 1942년 조선의 용군 여성 부대를 지휘하면서 항일 전투를 벌였다. 그는 한 손엔 총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일본군과 맞서는 모습에 '백마 탄 여장군'이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다 1949년 9월 1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한 달여 후 부평 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김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창원지역 시민단체인 '열린 사회 희망 연대'에서 2019년 1월 포상 신청을 했지만, 국가보훈처에서 '사망 경위 등 해방 후 행적 불분명'이라는 이유로 심사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희망 연대는 포기하지 않고 1년 7개월간 김 장군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지난해 7월 새로 입증된 자료를 첨부해 재심사를 요청했다.


이에 국가보훈처가 김 장군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기로 결정하면서 지난 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희망 연대는 "당연한 일이지만 가슴 벅찬 반가움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21년간 일제에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에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예우"라면서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명시 장군의 친족이라는 말도 못하고 살아온 친인척들께도 축하드린다"며 "폭넓은 심사 기준과 열린 역사관으로 밀양의 김원봉 장군 같은 분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명시 장군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번 훈장은 그의 여동생의 양아들이 받게 된다.


올해 독립유공자 포상은 총 303명으로, 이 중 김 장군과 같은 건국훈장 애국장은 19명에게 추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