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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기준만 적용한 임금피크제는 무효"...대법원 첫 판단

노사 합의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라도 고령자고용법상에 따라 '연령차별'에 해당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인사이트뉴스1


[뉴스1] 류석우 기자, 김도엽 기자 = 노사 합의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라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상)에 따라 '연령차별'에 해당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아울러 대법원은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연령 이상 노동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A씨가 과거 재직했던 B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B연구원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며 만 55세 이상 연구원에 대해 인사평가 및 급여체계에 관한 기준절차를 따로 뒀다. 임금피크제는 일정연령에 도달하면, 그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다.


A씨는 이로 인해 성과평가 최고등급인 S등급을 받더라도 임금피크제 적용 전 S등급 아래 등급을 받을 때보다 임금이 적다며 고령자고용법상 제4조의4를 어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B연구원이 만든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과 역량등급이 강등돼 수당과 상여금, 퇴직금, 명예퇴직금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지난 2014년 약 1억8339만원 상당의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B연구원은 만 55세 이상 직원들의 수주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떨어져 55세 미만 직원들과 차등을 둘 이유가 있고,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퇴직 평균연령이 상승하는 정년보장 효과가 있어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 전 노동조합과 장기간 협의를 거쳐 충분히 의견수렴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 금지' 조항을 강행규정으로 보고,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모두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 금지조항을 강행규정으로 보고 B연구원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B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사실상 만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의 급여를 삭감하는 내용이고, 노조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임금피크제 내용 자체가 법에 반해 효력이 없다고 봤다.


2심도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후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는데,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먼저 고령자고용법 규정이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봤다. △연령차별을 당한 사람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고 △구제조치와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으며 △시정명령 불이행시 과태료가 부과되는 점을 고려하면 강행규정이라고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도 최초로 제시됐다. 대법원은 먼저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아울러 성과연급제로 인해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는데 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은 점과 임금피크제를 전후로 A씨에게 부여된 목표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을 보면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껏 하급심에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나온 적은 있지만,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재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대법원 판단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며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사건 관련 임금피크제의 효력 인정 여부는 △임금피크제의 도입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대상조치의 적정성 △감원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에 따라 잘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B연구원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대다수 기업에서 도입한 전형적인 임금피크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향후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는 2015년 12월 모든 공공기관에서 도입한 뒤 민간기업으로도 빠르게 확산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00인 이상 기업의 27%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며, 2016년 기준으로는 46.8%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