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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서 중공군 습격에 사망해 70년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미군' 남동생 보고 오열하는 누나

70년이라는 긴 세월의 바다를 건너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 남동생을 보고 누나는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인사이트드로이터 병장의 관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족들 / The Frederick Newspost - Bill Green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70년이라는 긴 세월의 바다를 건너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 남동생을 보고 누나는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일(현지 시각) 프레드릭 뉴스포스트(The Frederick Newspost)는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21살의 나이에 전사한 로이 찰스 드로이터(Roy Charles DeLauter) 병장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드로이터 병장은 1948년 미국 육군으로 입대해 2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미 제7보병사단 제 32보병연대 소속으로 한국 전쟁에 투입됐다. 북한이 남한에 쳐들어온 직후였다.


드로이터 병장은 그로부터 6개월 간 한국 땅을 지키다 1950년 11월 27일, 중공군의 습격으로 전장에서 사망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인사이트로이 찰스 드로이터(Roy Charles DeLauter) 병장 / Courtesy of the Defense POW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로 2살과 3살 된 딸이 있었다.


드로이터 병장의 가족들은 그를 '장난 꾸러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철부지로만 생각했던 남동생이 전쟁터에 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누나 에블린 래 드로이터 에카드(Evelyn Rae DeLauter Eccard, 93)와 동생 제인 드로이터 클라인(Jane DeLauter Kline, 91), 마가렛 드로이터 칼(Margaret DeLauter Carr, 90)은 드로이터 병장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어도 유해는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해도 돌아오지 못했다. 70년 동안 드로이터 병장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고 여전히 '실종 상태'로 남아있었다. 


인사이트드로이터 병장의 누나 에블린 래 드로이터 에카드(Evelyn Rae DeLauter Eccard, 93) / The Frederick Newspost - Bill Green


제인은 "한국 전쟁이 휴전에 돌입하고 미군 포로들이 풀려났을 때 우리 가족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며 "어머니는 '저들 중 아들이 있을 수 있다'며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의 딸 샤를린 드로이터(Sharlene DeLauter, 74)는 "어린 시절 한국 전쟁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며 혹시라도 아버지를 볼 수 있을까 찾아봤다"며 "친구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2018년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진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중에 드로이터 병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듣지 못하고 드로이터 병장의 부모, 아내, 몇몇 형제는  세상을 떠났다.


인사이트The Frederick Newspost - Bill Green


마침내 지난 19일 드로이터 병장의 유해는 성조기가 덮인 관 속에 담겨 돌아왔다.


드로이터 병장의 누나 에블린은 동생이 담긴 관을 끌어안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드로이터 병장의 부고는 다음과 같다.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 솜씨가 좋았으며, 10살 때 하모니카 연주를 배웠던 청년. 네 잎 클로버를 잘 찾아내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