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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21년 만에 찾아간 여성의 복수 방법

1970년대 이웃집 아저씨에게 무참히 성폭행을 당한 9살 소녀는 21년 뒤 복수를 해냈다.

인사이트김부남 살인 사건 당시 언론 보도 / KBS


[인사이트] 박상우 기자 =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어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1년 1월 30일 한 여성이 살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여성의 이름은 김부남. 그는 집 안방에서 한 남성의 사타구니를 칼로 난도질했다. 단순한 살인으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장은 처참했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떠한 이유에서 이런 범행은 저지른 것일까. 이는 여성이 어린 시절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나타난 트라우마의 영향이었다. 


해당 사건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에 당한 성폭행이 어떠한 상처와 후유증을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반면교사적 사건이자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 보호법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알려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김씨가 성폭행을 당한 건 그의 나이 9살 때였다. 당시 그는 이웃집 아저씨인 송백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잠깐 심부름시킬 게 있는 말에 따라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송씨는 어린 소녀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입을 틀어막은 뒤 강간했다. 피가 철철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송씨는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며 "말하면 네 가족을 포함해 모두 죽일 거다"고 협박했다.


어린 김씨는 너무나 무서웠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고통에도 그는 가족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도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조금 다친 것뿐이다"며 얼버무렸다.


그렇게 김씨는 홀로 남게 됐다.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트라우마)는 오래갔다. 특히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끔찍했던 어릴 적 기억은 김씨를 계속 괴롭히며 혼란스럽게 했다. 이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이후 성인이 된 김씨는 중매를 통해 결혼하게 됐다. 하지만 정상적인 결혼생활은 어려웠다. 김씨는 남편의 손길이 당시 송씨의 손처럼 느껴졌다. 


인사이트법정에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김부남 / MBC 


여러 차례 노력해봤지만 부부관계는 불가능했고 두 사람은 결혼 두 달 만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됐다.


두번째 결혼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김씨는 같은 문제로 또 불화를 겪고 남편과 헤어졌다. 김씨의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김씨는 모든 원인이 송씨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송씨를 고소를 하려 했으나 공소시효(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기간)는 끝난 뒤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망친 근원을 해치우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1991년 1월 30일 김씨는 시장에서 예리한 부엌칼과 과도를 샀다. 낡은 손가방으로 칼집을 만들어 허리 양쪽에 찬 뒤 송씨 집 문을 찾았다. 문이 열리자 김씨는 "할 말이 있으니 나오라"고 불러냈다. 


그런 김씨에게 송씨는 "미친 XX, 다 끝난 일 가지고 왜 또 그러느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김씨는 문을 박차고 방 안으로 들어가 중풍을 앓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송씨를 넘어뜨렸다. 


인사이트법정에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김부남 / MBC


그리고 허리춤에서 부엌칼을 꺼낸 뒤 성기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다 다시 하복부 쪽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송씨의 저항에 부엌칼을 빼앗기자 함께 가져온 과도를 꺼내 또 한번 흉기를 휘둘렀다. 


비명을 듣고 찾아온 이웃 주민들이 저지할 때까지 난도질은 계속됐다. 송씨는 아내에게 "여보...빨리...병원"이란 말을 남긴 채 그대로 숨지고 말았다. 


김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살인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법정에서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다"고 답했다. 법원은 성폭행 트라우마가 갑자기 발현돼 억제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한 장애를 보였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살인 최저 형량 5년의 절반 수준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3년간 집행유예, 치료감호 1년을 명령을 받았다. 항소심과 대법원 최종심에서도 항소와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인사이트김부남 살인 사건 당시 언론 보도 / MBC


김씨는 이후 약 1년 7개월간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감호를 받은 뒤 1993년 5월 석방됐다. 이후 김씨는 지방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동 성폭력 문제를 조명한 이 사건은 '김부남 살인 사건'이라 불리며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한편 지난 2019년 3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8년 상담 통계'에 따르면 의료 지원을 받는 성폭력 피해자들 중 49%(39명)가 성폭력 피해가 발생한 지 3년이 넘었다고 답했다.


특히 10년 이상 전에 피해를 경험한 대상자가 27.8%(22명)로 나타나 여전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에서 3년이 27.8%(22명), 1년 미만이 22.8%(18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