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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돌아오자 했는데 어느새 64년이 흘렀네요"

1951년 9월 전쟁통 속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산가족이 된 유감식 씨의 사연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일주일만 있다가 돌아온다고, 쌀 두어 말이랑 깨소금을 챙겨 어머니를 따라나왔는데…"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냉정1리에 사는 유감식(77)씨는 1951년 9월 전쟁통 속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산가족이 됐다. 

어머니, 여동생 한명과 함께 내려왔고 아버지는 더 어린 여동생 둘과 데리고 고향에 남았다.  

시간이 흘러 귀향의 약속을 못 지킨 지 어느새 64년이다.

유씨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송현리. 해안가(경기만)에서 불과 2㎞ 떨어진 동네다. 

전쟁이 길어지자 송봉면 주민들은 1951년 9월 용매도에서 연평도를 거쳐 미군 LCT전함을 타고 전남 여수(당시 여천군)까지 갔다. 배에 탄 피난민 수만 5천7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유씨 나이 열네살 때였다. 

여수에선 남의 집에 방을 얻는 식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던 송봉면 주민들은 휴전이 되자마자 다 같이 북한 가까이 가서 살기로 했다고 한다. 군·면·리 실향민 대표들이 답사까지 가 찾아낸 게 바로 이곳, 북한이 코앞인 관인면 냉정리다.

냉정리로 올라가는 길은 배가 아닌 기차에 몸을 실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까진 기차를 탔고 이어 미군 트럭으로 옮겼다. 

유씨는 휴전 이듬해인 1954년 3월 실향민 230여세대가 북녘 고향을 바라보고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했다.  

"집 한 채 없고 땅도 다 황무지였는데 집도 짓고 땅도 갈고 고생을 무지 했다"고 했다. 그랬던 이곳이 이젠 땅이 비옥하기로 유명한 지역이 됐다. 행정구역상 포천시이지만, 철원 동송읍과 붙어 있어 '철원평야'로 묶인다.  

"우리 동네가 농사가 잘 된다"며 자랑을 하는 그에게 이제는 냉정리가 고향이나 다름없다지만 가족을 두고온 '진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다 못하는 듯했다.



키 180㎝에 건장한 체격의 유씨는 아직 '사나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해 보였지만 기자가 '황해도'란 단어를 꺼내기만 해도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실향의 아픔은 컸다. 

유씨는 "이번에도 이산가족 신청을 했지만 안 됐다"면서 "원래부터 이북 얘기는 잘 안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향 땅에 가서 보고 싶은 것, 여동생을 만나면 묻고 싶은 말과 해주고 싶은 얘기 등을 캐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어지는 침묵 속에 한(恨)의 세월이 묻어났다.

냉정리 마을에서 지금까지 이산가족을 만난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그마저도 북한에 있는 형이 남한의 동생을 찾았을 때였다. 통일만큼이나 이산가족 상봉도 이뤄지기 어려운 꿈같은 일인 셈이다. 

그래도 유씨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른 시일 내로 통일이 될 거라는 희망은 절대 못 버린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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