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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순사들 벌벌 떨 정도로 '강렬한 포스' 내뿜던 독립운동가 장석천의 마지막 눈빛

독립운동을 벌이다 옥고를 치르고 33살이란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던 장석천 선생의 인물카드가 조명받고 있다.

인사이트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장석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단 한 장의 사진이 누리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진 속 남성은 죄수복을 입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짧게 자른 머리와 길게 찢어진 눈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기 힘들 정도로 '반항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옥고로 인해 다듬지 못한 수염은 너저분하게 자랐지만 강렬한 인상을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강렬한 눈빛으로 지금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끄는 그는 독립운동가 장석천이다. 


인사이트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장석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석천 선생은 1903년 전남 완도군의 작은 섬 신지도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그는 1918년 서울로 올라와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일본인 교사의 차별 대우와 인격적 모멸에 저항하여 보성고보로 전학을 갔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지만 4개월 만에 광주로 돌아와 청년들을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이를 지원하는 데 힘썼다. 


청년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장 선생의 노력은 1929년 광주항일학생운동에서 큰 빛을 발했다. 


선생은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이었던 허헌과 시위의 전국적인 확산을 협의하고 직접 서울로 올라와 시위를 추진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밀정'


인사이트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tvN '미스터 션샤인'


학생들과 비밀리에 접촉하며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그해 12월 5일 체포됐다. 


이후에도 수감되고 출옥하기를 반복하던 선생은 1932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나왔으나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1935년 10월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불과 33살이었다. 


인물카드 속에 담긴 선생의 모습은 그 시대 치열한 투쟁 그 자체를 보여준다.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한 그의 헌신, 그게 바로 진정한 '멋'이 아니었을까.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국립대전현충원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한편 선생이 사망할 당시 12살 된 딸 하나가 있었다. 장옥선이란 이름의 딸은 일제 말기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왔으나 6·25전쟁 중에 행방불명됐다. 


선생의 유해는 광주에 매장됐다가 지난 2003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