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남해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인근 백도 해상으로 조업을 나간 저인망 트롤 어선 금강호(89t)는 태풍으로 기상이 악화하자 15일 밤 피항차 부산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10시간을 걸려 부산 남형제도 인근 20㎞ 해상까지 왔을 때였다.
갑자기 돌풍과 함께 집채만한 너울성 파도가 금강호 왼쪽을 강타했다. 금강호는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다.
선장 정도영(61)씨는 키를 반대로 돌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크게 기운 배는 이미 복원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는 사이 다시 큰 파도가 금강호를 덮쳤다.
정 선장은 "같은 방향으로 2번 파도를 맞아 배를 살릴 가망이 없어 선원들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 선장은 배 안에 있던 선원 8명을 모두 조타실로 불러 구명조끼를 입히고 구명정을 터뜨렸다.
하지만 왼쪽으로 기운 배가 구명정을 덮치면 선원들이 위험할 수 있어 대형 부의 2개를 묶고 바다로 띄웠다.
인근에 동료 어선이 있어 조금만 버티면 구조가 가능할 것이라는 45년 경력 마도로스의 판단력이었다.
정 선장은 15년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한 배에서 선원들에게 다급한 퇴선명령을 내리고 인근 동료 어선 윤창호(65t)에 배 위치를 알려주며 구조신호를 보냈다.
선장은 배에서 뛰어들자마자 "아마르, 밧데리, 토로, 카톡' 등 인도네시아 선원 4명과 기관장, 조기장, 조리장의 이름을 불렀다.
선원 대부분은 대형 부의에 달린 줄을 잡고 있었지만 갑판장이 보이지 않았다. 갑판장은 다행히 다른 부의를 잡고 있었다.
파도를 맞은 금강호가 침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 등 9명은 높이 3∼4m 파도와 초속 15m 이상의 강풍이 몰아치는 칠흑같은 망망대해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20여분만에 도착한 윤창호에 무사히 구조됐다.
정 선장은 "배는 다시 구하면 된다"며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선원들을 모두 살렸으니 그것으로 족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 관계자는 "높은 파도와 강풍 등 악천후 속에서 어선이 침몰했는데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며 "신속하고 현명한 대처와 인근 어선의 도움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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