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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오지 말라 했다"···임시조립주택서 쓸쓸한 설 명절 보내고 있는 강원 산불 이재민들

강원 산불과 수해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이 임시조립주택서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쓸쓸한 설 명절을 맞이하고 있다.

인사이트뉴스1


[뉴스1] 서근영, 고재교 기자 = "명절이면 즐거워야 하는데 우울하기만 해. 집이 좁아서 자식들도 오라 해야 할지 고민이야"


설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1일. 지난해 10월 강원 동해안을 덮친 태풍 미탁의 최대 피해지 중 한 곳인 삼척시 갈남리 신남마을 내 조립식 주택에서 만난 한 이재민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태풍 당시 마을 곳곳을 휩쓸었던 수마의 흔적은 필사의 복구 끝에 대부분 자취를 감췄지만 이재민들의 마음속에는 그날의 고통이 그대로 남아있다.


인사이트뉴스1


마을 초입에 조성된 임시조립주택 단지는 입구마다 이재민들의 신발이 놓여 있을 뿐 한산한 모습이었다.


삼척시는 수해 이후 수요조사에 따라 물이 빠지고 난 후 골조가 온전하거나 수리를 통해 복구가 가능한 곳을 제외하고 총 37동의 임시조립주택을 이재민에게 제공했다.


당시 태풍으로 보금자리를 잃고 임시조립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오복순 씨(63·여)는 지금도 통장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들이 살고 있는 임시조립주택은 거실 하나에 화장실과 주방이 딸려있는 면적 24㎡(7.26평) 규모다.


오씨 내외는 그럭저럭 몸을 뉘고 지낼 수는 있다지만 다가오는 설 연휴 찾아올 자식들을 맞이하기엔 턱없이 비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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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송두리째 토사에 묻혀버린 이들이 현재까지 받은 금액은 정부지원금과 성금 등을 합쳐 약 1900만 원.


오씨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고 대대적으로 방송에 나오기에 그래도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겠구나라고 내심 바랐지만 지원받은 금액으로는 집의 반도 못 짓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금액도 금액이지만 이것으로 끝인지, 아니면 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지 속 시원하게 설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고 답답함을 토했다.


이에 마을 남자들이 대책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 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여자라는 이유에 나서기가 망설여진다고 고백했다.


오씨는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려 해도 막막한 마음에 누워도 잠이 안 오고 명절이 와도 우울하기만 하다"면서 "자식들도 이번 설에는 오지 말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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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의 이웃인 홍분녀 할머니(77)는 태풍 당시 쏟아지는 물길을 피해 달아나던 중 굴러들어온 돌덩이에 맞아 갈비뼈와 쇄골이 부러져 아직도 복대를 착용하고 있다.


고령인 홍씨와 남편 이정하 할아버지(85)는 수마가 닥친 날 살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며 지붕으로 대피했고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맞으며 그날 밤을 새웠다.


컴컴한 어둠 속 구조대원조차 쉽사리 뛰어들지 못할 정도로 물길이 셌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에야 구조된 홍씨는 저체온증과 갈비뼈 골절 등의 부상으로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야 했으나 혼란스런 상황에서 탈진증상까지 와 물이 축축하게 고여 있는 빈집에 누워 한참이나 숨을 돌려야 했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져 2주간 입원해 치료를 받고 돌아왔지만 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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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마른 체형인 홍씨는 수해를 겪으며 온갖 고생을 한 끝에 한때 체중이 38㎏까지 빠졌다.


지금도 기침이 나오거나 숨을 크게 쉬면 가슴께에 통증이 밀려오는 상황에서도 몸이 불편한 남편을 챙기기 위해 빨래와 식사 준비 등 집안일을 해야 한다.


홍씨는 "처음에는 살기 위해 아픈 줄도 모르고 필사적이었지만 일이 지나고 나니 막막합디다"라며 "몸이나 성하면 그나마 낫겠는데 자그마한 일 하는 데도 힘이 드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사 남매가 있는데 집도 좁고 해서 올 명절에는 큰아들과 큰딸만 오라고 했다"며 "집이 좁기에 자식들은 아마 밖에 있는 숙박업소에서 잠을 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홍씨 내외의 집은 마을주민들의 추천으로 여러 후원 기관의 도움을 받아 주택 복구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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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는 "저 앞에서 열심히 짓고 있는 것이 우리 집인데 여름 전에는 완성이 될 것 같다고 들었다"며 "이장님을 포함해 마을주민들 모두 본인들도 어려울 텐데 할아버지가 나이도 많고 내가 다친 걸 생각해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이웃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지난해 4월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강원 고성군 피해 현장의 이재민들도 마음의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설날을 맞이하게 됐다.


토성면 원암리 일원에서 목장갑을 낀 채 집 짓는 일에 열중인 이근재 씨(51)는 "이번 설에는 제사를 못 지낸다. 다 타서 집도, 용품도 없다"며 체념한 듯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현재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그는 "이번 설날은 임시 주거 조립주택에서 지내야 한다"며 "지난 추석 때 친인척들이 함께 있을 곳이 없으니 얼굴만 보고 가거나 전화로 안부를 전했었는데 이번 설날도 비슷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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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산불로 집을 잃은 고성지역 이재민들은 총 506세대 중에서 250세대가, 속초에서는 총 78세대 중 21세대가 조립주택에 입주했다.


현재는 집을 새로 지어 거주지를 옮긴 이재민도 있지만 공사 마무리가 안 됐거나 착공조차 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여전히 조립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이날 둘러본 고성 원암리와 성천리, 인흥리 마을은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몇 곳에서 주택과 창고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흥3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순기 씨(86·여)는 "집을 짓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짓고 있다"며 "집 짓는 사람은 빚지고 집을 짓고 있다.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빚을 낼 수 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제사는커녕 도움받아가며 얻어먹고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신성통상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할 명절이지만 마을주민들은 당시 끔찍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회관에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은 "(당시 악몽이) 여전히 꿈에 나타난다. 이따금씩 떠오른다"고 말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수많은 정치인과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금방 뭐라고 될 것처럼 말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고 한탄했다.


고성군과 속초시에 따르면 애초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에는 이재민 총 328세대가 입주했으나 현재 50여 세대가 주택공사를 마치고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조립주택은 1년간 지원된다. 연장 사유가 있는 경우 1년 이내의 기간에서 연장이 가능하다. 단 사용 기간이 만료된 경우 피해주택을 복구하거나 임대주택 등으로 이주할 경우 반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