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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구하려 돈 들고 마약갱단 소굴 들어간 아내

멕시코 한 교민이 미국 접경도시 인근에서 멕시코 북부의 악명 높은 마약갱단에게 납치됐다가 나흘 만에 풀려났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이제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네요. 내일부터 다시 일해야죠."

 

6일 밤 11시(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시내에서 조그마한 한국 식당을 경영하는 교민 박모(47)씨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입을 굳게 다문 채 애써 웃음을 지었다. 

 

박 씨는 이날 멕시코 북부의 악명 높은 마약갱단의 근거지를 찾아가 나흘 전 납치돼 붙잡혀 있던 남편의 몸값을 내고 함께 돌아왔다.

 

남편 이모(46)씨가 갱단에 납치된 것은 지난 2일 오전 8시 30분.

 

미국 휴스턴에서 한국 상점에 납품할 식품을 구입, 국경을 넘어온 뒤 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한 시골마을 국도변을 달리던 중이었다.

 

이 씨는 납치되자마자 눈이 가려지고 쇠고랑이 채워진 채 산속의 한 건물에 감금됐고 괴한들은 부인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 몸값을 요구했다.

 

박 씨는 마약갱단 조직을 상대로 한 현지 경찰의 수사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점, 경찰에게 알리면 오히려 남편의 목숨이 위험한 점 등을 고려해 외부에 알리지 않고 교민 몇몇과 함께 협상을 벌였다. 

 

애초 갱단이 요구한 몸값을 절반 이상 깎은 박 씨는 이날 새벽 교민 2명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차를 빌려 갱단이 오라는 곳으로 향했다.

 

접선 장소를 수차례 바꾸는 갱단의 지시대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타마울리파스 주의 후미진 산속이었고 주변은 말 그대로 '소굴'과 같은 곳이었다.

 

산길 속에서 남편이 타고 있는듯한 차량을 마주친 박 씨측은 "인질이 살아있는지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갱단은 남편을 차에서 끌어낸 뒤 복면을 벗겨 확인을 시켜줬다. 

 

박 씨와 함께 간 지인들 중 한 명이 "내가 나가서 돈을 건네겠다"고 했으나 박 씨는 "여자에게 해를 입히겠느냐"며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말하고 차 밖으로 나갔다. 

 

총부리를 겨눈채 돈 봉투를 확인한 갱단 조직원은 이를 낚아채 달아나듯 현장을 벗어났고 이어 이 씨를 내보냈다.  

 

납치한 사람을 죄의식 없이 살해하는 잔인한 마약갱단의 특성을 아는 이씨 부부는 그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갱단이 '달려가'라고 말했으나 뒤에서 총알이 날아올까 너무나 두려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걸어가면서 복면을 벗었지만 멀리서 보니 아내가 탄 차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모두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몸서리쳤다. 

 

석방되기까지도 아슬아슬한 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내 박 씨 일행이 탄 비행기가 연착하자 최초 접선 장소로 가던 갱단은 차를 돌렸고, 그 순간 안에 타고 있던 이 씨는 "협상이 결렬됐고 나도 끝났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씨는 잡혀있는 동안 잠은 거의 못 잤고 멕시코인 2명이 납치돼 들어오자 같은 방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공포를 달랬다. 납치범들이 준 음식은 옥수수 전병 몇 조각과 물, 소금이 전부였다.  

 

미국에 식료품을 구입하러 자주 다닌 한 교민은 이 씨를 납치한 괴한들이 멕시코에서 가장 잔인하다고 알려진 마약카르텔의 조직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마침내 이 씨가 아내와 함께 식당으로 돌아오자 어머니(73)는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라며 굳게 껴안았고 기다리고 있던 교민들과 같은 교회에 다니던 신도들이 '생환의 꽃다발'을 건넸다. 

 

이들 부부는 멕시코에 16년 전 이민을 와 갖은 일을 하면서 고생한 끝에 2년 전 한인 가게가 밀집한 지역에 식당을 차렸고 최근 다른 교민 몇명과 함께 미국 휴스턴 등지에서 식료품을 구입해 한인 가게에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을 계속할지 묻는 말에 이 씨는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했다.

 

휴스턴에 식료품을 구매하러 가는 교민들은 접경지역의 길목을 지키는 갱단을 피하려고 멕시코시티에서 새벽에 출발, 17시간 동안 1천700㎞의 거리를 교대로 운전해 미국 국경을 넘기도 한다. 

 

한 교민 관계자는 "온갖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생계를 위해 다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라면서 "교민들이 뜻을 모아 어려운 일을 함께한 것은 그나마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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