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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이 폭동 일으켰는데 유일하게 한 슈퍼마켓만 공격받지 않았던 이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1992년 폭동 때 흑인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지켰다.

인사이트Thetruthaboutguns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폭동은 한인 사회에 큰 피해를 줬다. 


한인이 운영 중이던 2,300여 개의 점포가 파괴됐고 집계된 피해액은 약 3억 5천만 달러(한화 약 4,112억 원)에 이른다.


폭동으로 인해 한인들의 재산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슈퍼마켓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이 가게의 주인은 홍정복씨. 


홍씨가 손수 보여준 친절과 존중의 가치가 흑인 사회의 마음을 울렸고 폭동 중에도 흑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피해를 입지 않게 가게 앞에서 경비를 섰던 것이다.


인사이트LA 폭동 / GettyimagesKorea


홍씨는 당시 LA에 살던 가난한 흑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었다. 


기저귀와 우유를 살 돈이 없는 흑인 여성에게 "돈은 다음에 내라"며 물건을 주었고 여성은 약속을 지켰다. 


생계보조비로 나온 수표로 술을 산 흑인 남성이 나머지 돈을 현금으로 달라고 하자, 남성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부인이 거스름돈을 받아 가게 했다.


혹여 남성이 술에 취해 남은 돈을 흥청망청 쓸까 하는 걱정에서 나온 홍씨의 배려였다. 


인사이트Kore Am Journal


물건을 훔친 사람들마저 따뜻하게 품었던 홍씨는 인종을 넘어선 사랑으로 많은 친절을 베풀었다. 이런 그녀에게는 '마마(엄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 홍씨의 부드러운 미소에 LA의 흑인 사회는 감동을 받았고, 차별 대우에 크게 상처받았던 흑인과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은 그녀에게서 작은 위안을 얻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홍씨였기에 폭동 상황에서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KBS1 '뉴스9'


1999년 홍씨가 무장한 강도의 총격을 받아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에 많은 흑인들이 달려 나와 그녀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단골손님이었던 LA 카운티 운수국 소속 버스 기사 6명이 정복 차림으로 홍씨의 관을 운구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장례식장에 미처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가게로 몰려들었다. 그곳에 꽃다발과 촛불, 성격 책, 추모의 글귀 등을 두고 '마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LA 지역 사회의 신망을 받아온 홍씨의 마지막 길은 인종을 초월한 화합의 장이 됐다. 


서로를 향한 적대심과 증오로 갈등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미국 사회에서 홍씨가 보여준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회자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