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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일)은 일본 벌벌 떨게 만들었던 '의열단'이 결성된 지 100주년 된 날입니다

100년 전인 1919년 11월 10일 조선인 청년 13명이 모여 결성한 의열단은 일본 제국주의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 단체였다.

인사이트의열단원 / Wikimedia Commons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드거 스노의 전 아내이자 언론인이었던 님 웨일즈가 남긴 저서 '아리랑'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그들은 사진 찍기를 아주 좋아하였으며, 언제나 이번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죽는 날을 기약하며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이들은 바로 '의열단'의 단원들이다. 


그리고 오늘은 조선인 20대 청년 13명이 만주 길림성에 모여 의열단을 결성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인사이트영화 '암살'


푸른 눈의 미국 여성 님 웨일즈가 '아리랑'을 남겼던 결정적인 이유는 중국 연안에서 만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의열단원이었던 김산(본명 장지락) 때문이었다. 


웨일즈는 김산에 대해 "그는 내가 7년 동안 동방에 있으면서 만났던 가장 매력적인 사람 중의 하나였다"고 평했다. 


웨일즈가 김산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현재로서는 추측만이 가능하지만, 이는 김산뿐만이 아니라 당시 의열단원들이 풍기던 모습 중 하나였다. 


그녀는 김산 이외의 의열단원들에 대한 묘사도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그들의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었다.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백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이러한 탓에 의열단원들은 조선과 중국의 여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인사이트영화 '아나키스트'


때로는 호색한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의열단원들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던 이유는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죽음을 향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항상 쾌활함을 유지했고, 이런 그들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이 의열단의 단장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이 맡았다. 


비밀 결사 조직이었던 탓에 단원들이 얼마나 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몇몇의 알려진 이름들을 보면 그들의 위용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시 '절정', '광야' 등으로 유명한 이육사, 조선총독부를 폭파시킨 김익상,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홀로 경찰 400명과 대치했던 김상옥,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폭파시킨 나석주가 의열단원이다.


인사이트김상옥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속 한 장면 / 영화 '밀정'


여성 의열단원이었던 구여순은 국내에 잠입해 작전을 벌이던 도중 붙잡혀 법정에서 "의열단의 취지는 무엇인가?"라는 검사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구여순은 "조선 독립이 되기까지 '암살''파괴'를 계속하는 일이다. 파괴란 일제의 살해뿐 아니라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며, 일제적인 모든 제도와 인습까지도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암살과 파괴라는 과격한 방법의 독립운동이었으나 의열단의 행동 하나하나에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


그 명분이란 '대한의 독립'이란 숭고한 뜻이었고 이 때문에 의열단원들은 죽음 앞에서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었다. 


인사이트영화 '밀정'


의열단의 이러한 독립운동들은 향후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으로 이어져 윤봉길과 이봉창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낳았다.


하지만 의열단을 향한 국내의 평가는 아쉽기만 하다. 의열단의 단장인 김원봉을 비롯해 그 단원 대다수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까닭이다. 


특히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경우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고 6·25전쟁 당시 인민군 장교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가치와 잣대만으로 60년 전의 인물을 평가하는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가 체제와 이념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의열단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