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5일)은 '한국군+UN군'이 목숨을 걸고 '인천상륙작전'을 실행시킨 날입니다

인사이트1950년 9월 15일 연합군의 포격으로 불타고 있는 인천 월미도의 북한군 진지. / 사진=해군


[인사이트] 전형주 기자 = 1950년 9월 15일. 북한 공산군에게 국토를 모조리 내주고만 있던 6·25전쟁의 정세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69년 전 이날엔 더글러스 맥아더 국제연합(UN)군 사령관의 지도 아래 인천에서 기습 상륙작전이 진행됐다. 이 작전은 서울을 탈환하고 전쟁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됐다.


당시 남한은 부산과 진해를 비롯해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전 지역을 북한에 내준 상태였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였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도 맥아더 사령관은 오로지 서해, 수도 서울의 관문 격이었던 인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남쪽을 적극 방어하면서도 병력을 모아 인천에 상륙하는 방안을 구상해냈다.


공산군이 몰려있는 최전방을 피해 후방인 인천에 주력부대를 집중, 적의 병참선을 차단하자는 취지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인천상륙작전'


공격을 이틀 앞둔 13일, 인천 앞바다에는 7개국 소속 군함 수백 척이 모여들었다. 연합군 제10군단 병력 7만4000여명과 2만5000t의 물자, 6600대의 차량, 261척의 함정이 투입됐다.


해군 함정과 항공기는 작전 개시 48시간 전부터 폭격을 감행, 공산군을 제압했다. 곧바로 15일 새벽. 인천항 부근 월미도를 향한 상륙작전이 시작됐다.


미군은 상륙하고 30분이 채 안 돼 월미도에 무혈입성했다. 그러고는 밀물을 기다리며 인천 시가지를 폭격했다.


밀물이 시작되자 연합군은 상륙정을 인천항에 보내 작전 개시 24시간 만인 16일 인천을 탈환했다. 전사자는 20명에 불과했다.


인사이트사진=해군


북한군도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인천은 지형적 악조건으로 상륙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고 방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인천을 장악한 연합군은 서울과 수원으로 진격했고, 낙동강 전선에서도 반격을 시작했다. 북한군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27일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가 게양됐다.


북한군은 중공군의 도움을 받아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1953년 7월 휴전 시점까지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한편 지난 11일 미국 캠프 퍁들턴 내 퍼시픽 뷰 이벤트 센터에서는 제69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정진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장이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인사이트사진=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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