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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 털어 '봉오동 전투'에 돈 보태고 광복 40일 전 숨진 독립군의 정체

최근 봉오동 전투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털어 군자금으로 사용하고 독립군 진지를 구축하는 등의 공을 세운 최운산 장군의 업적이 알려지고 있다.

인사이트영화 '봉오동 전투'


[인사이트] 강유정 기자 = 일제강점기의 아픔 속에서도 승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 '봉오동 전투'가 관객 수 220만 명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봉오동 전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부분 '봉오동 전투' 하면 홍범도 장군, 최진동 장군 등을 떠올리지만 뒤에서 묵묵히 이들을 지원한 봉오동 전투의 숨은 영웅이 있다.


바로 최운산 장군이다.


인사이트최운산 장군 / 국가보훈처


최운산 장군은 봉오동 전투의 주역 최진동 장군의 동생으로 전 재산을 바쳐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투사다.


형 최진동, 동생 최치흥과 함께 1908년 동삼성의 중국군 보위단에 군관으로 입대한 최운산은 장쭤린 군벌에서 공을 세워 토지조사사업 당시 엄청난 땅을 헐값에 불하받았다.


이후 최운산은 국수·콩기름·성냥·비누 등 다양한 생필품 공장과 목장을 운영하는 등 축산업과 무역업에서 사업수완을 발휘해 엄청난 부자가 됐다.


그의 손녀에 따르면 이때 최운산이 가진 땅은 부산 면적의 6배에 달했다고 한다.


인사이트영화 '봉오동 전투'


이후 1912년 최운산은 1개 중대 병력으로 자위대를 구성했고 그 수는 점점 불어나 1915년에는 봉오동 막사를 짓고 연병장을 닦아 부대원들을 훈련했다.


1919년 3·1운동에 이어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670명 자위부대를 '대한군무도독부'라는 이름의 독립군으로 재창설해 자신은 참모장을, 형 최진동과 동생 최치흥은 각각 사령관과 참모를 맡았다.


또 이듬해에는 6개월 과정의 군사학교 '사관연성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최운산은 1920년 5월 독립군 부대 통합의 산파역으로 나섰고 북로군정서·대한국민회·군무도독부·대한신민단·광복단·의군부 총 6개 단체 대표는 봉오동에서 연석회의를 열어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을 모두 합친 '대한북로독군부'를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최운산은 참모장을 맡았다.


인사이트독립기념관


부대 운영과 전투에 필요한 무기, 식량, 피복 등의 보급은 모두 최운산의 몫이었다.


그는 1920년 1월 대규모 토지를 현재 가치로 무려 150억 원에 달하는 5만 원의 군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러시아 내전에 휘말리게 된 체코군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무기를 팔아 귀환 자금을 마련했는데, 이때 최운산의 자금력과 러시아 네트워크로 독립군이 이를 사들였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봉오동 전투는 대승을 거뒀고, 이는 청산리 대첩으로까지 이어졌다.


인사이트영화 '봉오동 전투'


하지만 봉오동에 독립군 진지를 구축하고 독립군 부대를 통합한 그는 일본 경찰서 습격, 군자금 모금, 창씨개명 등으로 무려 6번 옥고를 치러야 했고, 전 재산을 독립 자금으로 쓴 후 형편이 어려워져 1945년 광복을 40여 일 앞두고 고문 후유증으로 쓸쓸히 숨을 거뒀다.


현재 최운산 장군의 후손들은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다 귀환해 연금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운산 장군은 큰돈을 벌어 후손들까지 대대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이다.


최운산 장군의 이야기를 접한 누리꾼들은 "위대한 독립운동가인데 이제서야 알려지다니…", "독립운동가는 나라를 위해 전 재산을 바쳤는데 그 후손은 지금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이제라도 알려져 다행이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는 홍범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구의 인물이 등장해 최운산 장군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름 없이 싸운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최운산 장군도 영화 어딘가에서 관객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인사이트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