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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한국인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독립투사 유관순.
8.15 광복절을 맞아 손톱이 뽑히고 코와 귀가 잘리는 고통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은 18살 소녀 '유관순 열사'가 당했던 끔찍한 고문이 재조명되고 있다.
독립에 대한 열망 하나로 이를 악물고 일제에 저항한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천벌을 받게 된다"
(좌) 위키백과, (우) 온라인 커뮤니티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죽는 순간가지 마음 속에 항상 '독립'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지난 1919년 4월 1일, 17살 소녀였던 유관순 열사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때 유관순 열사를 직접 체포해 서대문형무소로 끌고 간 사람은 충격적이게도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 조선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정춘영(鄭春永). 을사오적 이완용처럼 일제의 주구(走狗)가 되어 일본 헌병 보조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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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영이 유관순 열사에게 행한 고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손, 발톱을 다 뽑고 머리 가죽을 벗겼으며 불에 달군 쇳덩이로 성기를 지졌다.
심지어 정춘영은 독 안에 미꾸라지 수백 마리를 풀어놓고 유관순 열사의 옷을 다 벗겨 독 안에 집어 넣는 '미꾸라지 고문'을 자행했다.
미꾸라지는 어둡고 습한 곳을 찾아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정춘영은 유관순 열사에게 성 고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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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관순 열사는 방광 및 자궁 파열로 향년 18세에 순국했다.
정춘영의 만행은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충청남도 조사부를 통해 유관순 열사를 직접 체포, 고문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만천하에 공개됐다.
분명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인 친일 행각이 드러났지만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