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 서울
  • 10 10℃ 인천
  • 10 10℃ 춘천
  • 10 10℃ 강릉
  • 10 10℃ 수원
  • 8 8℃ 청주
  • 8 8℃ 대전
  • 9 9℃ 전주
  • 9 9℃ 광주
  • 8 8℃ 대구
  • 12 12℃ 부산
  • 14 14℃ 제주

74년 전 오늘, 마지막 왕자 '이우'가 조선 독립을 '일주일' 남겨두고 히로시마에서 전사했다

조선의 왕자였던 이우 왕자는 일본군에 의해 억지로 히로시마까지 끌려가 그토록 싫어하던 일본 땅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인사이트이우 왕자 / 황실황족성감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태평양 전쟁 당시 승기를 잡은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끌어내기 위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미군의 폭격기 B-29에 실렸던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는 히로시마 상공 9,750m 위에서 유유히 떨어졌고 곧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1945년 8월 6일 이날, 대한 제국의 왕족이자 일본 제국 육군 중좌였던 이우 왕자 또한 말을 타고 출근하던 중 이 원자폭탄의 섬광과 마주했다. 


폭발과 함께 그의 온몸에는 뜨거운 열기가 닿아 살이 녹아내렸다. 그 상태로 한참을 길거리에 쓰러진 채 있었던 이우 왕자는 폭발 당일 오후 뒤늦게서야 발견됐다. 


발견 즉시 바로 해군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결국 다음 날인 8월 7일 오전 5시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패망이 불과 일주일여 남은 때였다. 


인사이트원폭 이후 히로시마 / GettyimagesKorea


사고 전 이우 왕자는 일본으로 가기를 꺼렸었다. 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고 그는 다 망한 일본으로 가기보다 해방 이후의 조선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역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본토인 히로시마로 전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우 왕자의 전출 명령이 내려지고 그의 둘째 여동생 이해원은 "지금 일본으로 가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권총을 들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군인이었던 그는 명령을 어길 수 없었고 결국 여동생의 우려는 현실이 돼 이우 왕자는 타지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인사이트야스쿠니 신사 / gettyimagesKorea


죽음 이후에도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07년, 이우 왕자가 사망한 지 62년이 지나던 때 그의 위패가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일본은 유족의 동의 없이 그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고 따로 알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우 왕자는 죽은 후에도 자신이 극도로 싫어했던 일본의 신으로 남겨져 야스쿠니 신사에 갇혀 있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생전 일본, 일본의 것이라면 학을 떼고 싫어했던 이우 왕자. 


삼촌이었던 의민황태자(이은)의 부인 이방자 여사는 "일본인들에게 말썽꾸러기였다. 일본 것에 대하여 병적이라고 할 만큼 싫어했다"고 이우 왕자를 기억했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일본의 황족 아사카 다케히코 또한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고 항상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결코 뒤지거나 양보하는 일이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우 왕자가 세상을 떠난 날인 오늘(7일),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여전히 무겁다.


한편 그의 장례식은 1945년 8월 15일에 경성운동장에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의 운현궁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