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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사랑한 여인이 남편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남자가 쓴 시

평생을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며 시인 김정식은 가슴 아픈 시 한 편을 남겼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 김남하 기자 = 초혼(招魂) - '혼을 불러들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누구나 한 번쯤 이 시 구절을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화자의 애절한 심정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이 시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좌) 영화 '동주', (우) KBS1 '불멸의 청년 윤동주'


1902년 8월 6일,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난 김정식(金廷湜)의 어린 시절은 다소 불행했다.


고작 3살이었던 1904년, 그의 아버지 김성도는 일본인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정신 이상자가 돼버렸다.


할아버지의 집에서 키워진 김정식은 가족들이 들려주는 전래동화나 민요를 들으면서 아픈 상처를 잊으려 노력했다.


이후 평안북도 정주군에 있는 오산학교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나이가 3살 많은 '오순'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김정식과 오순은 마을 폭포수 근처에서 만나 물장구를 치는 친구로 지냈다. 티 없이 맑았던 김정식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없었다.


오순은 때로는 소꿉친구처럼, 때로는 친누나처럼 김정식을 보살펴줬고 김정식도 그런 오순을 잘 따랐다.


가슴 속에 상처가 많았던 탓이었을까. 김정식에게 오순은 한 줄기 햇살처럼 다가왔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햇살이 이처럼 포근하고 따스한지 처음 알게 됐다.


둘의 우정은 김정식이 14살이 되는 때까지 이어졌고 둘의 감정은 어느새 사랑으로 발전해 연인 사이가 됐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화창할 줄만 알았던 둘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김정식이 14살이 되던 해, 그의 조부는 김정식에게 강제로 혼인을 올리도록 명했다.


혼인해야 할 여인은 바로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이었다. 김정식은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남겨두고 김정식은 면식도 없었던 여인과 결혼을 해야만 했다.


김정식은 단 한 순간도 오순을 잊지 않았다. '진달래꽃' 같았던 그를 늘 그리워했다.


이후 오순도 19살의 나이로 시집을 가야 했다. 결국 김정식과 오순의 인연은 그렇게 끊기고 말았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오순이 시집을 간 지 3년이 지났다.


오순의 남편은 의처증이 심했고 매일 폭력을 일삼았다. 오순은 그렇게 악몽과도 같은 나날을 버텨내야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결국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오순은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 마리 접동새가 돼 하늘로 떠나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정식은 세상이 무너지는 심경으로 장례식에 참석했다.


평생에 가까운 세월을 가슴에 품었던 여인은 그곳에 더이상 없었다. 오순이 행복하길 바랐던 김정식의 소망은 못 다 핀 한 떨기 산유화가 돼 떨어졌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그렇게 오순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김정식은 그녀를 사랑했던 마음을 담아 시를 한 편 썼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초혼(招魂), 1925 -


그는 시의 마지막을 이렇게 써 내려갔다. 오순을 위한 시를 완성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더이상 김정식이 아니었다. 김소월(金素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