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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전 오늘(6일), '전범국'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핵폭탄'이 떨어졌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 보이'로 히로시마 주민 약 14만명이 사망했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1945년 8월 6일, 제2차 세계대전이 서서히 끝나갈(?) 무렵이었다.


미군의 폭격기 B-29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으로 날아들어갔다.


일본 주민들은 본토에서 전쟁이 치러지지 않았기에 그저 B-29를 미국의 정찰 비행기라고만 생각했다.


그 누구도 폭격기 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인사이트'리틀 보이' / wikipedia


B-29의 조종수는 본부에게 실행 명령을 받은 순간 9,750m 상공에서 리틀 보이를 히로시마로 투하했다.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던 리틀 보이는 히로시마 중심부 상공 580m 지점에서 폭발했다.


이 한 번의 폭발로 반경 1.6km 이내 모든 것이 파괴됐다. 히로시마 인구 34만명 중 무려 14만명이 초기 폭발 및 방사능 피폭 등으로 사망했다.


3일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이 투하됐고, 사태의 심각성을 더는 외면하지 못한 일본 수뇌부는 결국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했다.


인사이트(좌) 온라인 커뮤니티, (우) GettyimagesKorea


이 세상 유일무이한 '원폭을 맞은 국가'인 일본은 이 항복으로 전범국이 됐다.


사실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도 일본은 패망 직전이었다. 본토에서 싸우지는 않아 도시가 날아간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 해군은 거의 전멸에 가까웠다.


전쟁에 모든 물자가 동원됐기에 본토 주민들은 굶주림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사람들도 강제 징용 피해를 겪어야 했다. 전쟁터로 끌려간 젊은이들이 많았고, 전쟁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강제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수뇌부는 아직도 "덴노 반자이!"만 외칠 뿐이었다.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전쟁을 불사할 참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위키백과


'가미카제'라고 하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일찍이 없었고 지금도 없는 자살특공대를 조직해 미국에 맞설 정도였으니 그 정신 수준이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을 단숨에 제압할 방법이 필요했다. 본토에서 전쟁을 하면 미국 군인들의 소중한 목숨도 어느 정도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한 것은 원자폭탄이었다. 미국은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히로시마에서의 약 14만명, 나가사키에서 약 8만명의 희생자가 나오자 일본은 패닉에 빠졌다. 당장 내일 최후의 1인도 없어질 수 있다는 공포감에 젖어들었다.


결국 6일 뒤인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했다. 이에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이했고, 제2차 세계대전도 끝이 났다.


한편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도 피해를 봐야 했다.


당시 징용 등으로 끌려간 조선인들 약 7만 명이 피폭을 당한 것인데, 히로시마에서는 피해자 5만 명 중 3만 명이 넘게 사망했으며 나가사키에서는 2만 명 중 1만 명이 사망했다.


조선인의 사망은 오로지 일본의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