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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에게만 썩은내 나는 음식 줬다"···전범 기업 '미쓰비시'에 끌려간 할아버지의 충격 증언

광복 74년 만에 또다시 총성 없는 공격을 시작한 일본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YouTube 'media infact'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구한말 총칼을 앞세워 우리 땅을 침략한 일본.


일제의 만행으로 고통받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최근 한국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에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지만 아직도 배상을 거부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보복으로까지 이어졌다. 화이트리스트 27개국 중 한국만 배제한 것이다.


광복 74년 만에 또다시 총성 없는 공격을 시작한 일본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그 과거는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조선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김한수 할아버지(102)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1917년 황해도 연백 출생으로 전매지구 현장에서 노무직으로 일하던 김 할아버지는 1944년 8월 26일 아침, 트럭에 타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18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부산항을 거쳐 나가사키의 목조건축물에 떨어졌다.


그곳에서 김 할아버지는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고된 작업에 시달렸다. 매일 가스를 피우는 탓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기 힘들었다고 한다.


인사이트'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에서 울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당시 99) 할아버지 / 뉴스1


김 할아버지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바로 배고픔이었다. 그는 "개한테도 그런 음식은 안 준다. 기름 짜내고 난, 썩어서 냄새나는 깻묵이나 고구마 넝쿨을 바닷물에 삶아서 먹으라고 줬다"고 주장했다.


또한 "죽지 않게 먹이고 그래도 죽으면 내다 버리고, 죽지 않으면 또 일을 시켰다"고 전해 충격을 안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욕심에 열심히 일했지만 고향으로 보내준다고 한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도 한다.


그러던 중 김 할아버지는 원폭을 맞았다. 김 할아버지는 "아무 소리도 없이 새파란 불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몸이 붕 떴다가 다시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MBC


김 할아버지가 눈을 떴을 땐 황색의 안개만 가득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신음이 터져 나오며 수많은 사람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일본의 바다와 땅에 쓰러졌다.


식민지에서 제국의 노동자로 억울하게 죽어간 강제징용 피해자들. 


이들은 해방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