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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가능'한 군대 만들려 '개헌' 시도하는 일본이 과거 벌였던 끔찍한 전쟁 범죄 7

개헌을 통해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가 됐을 때 다시 일어날 지도 모르는 끔찍한 전쟁 범죄 7가지를 소개한다.

인사이트아베 신조 일본 총리 / GettyimagesKorea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일본에서 제25대 참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현 아베 신조 정권은 이번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민당과 자민당에 우호적인 공명당의 의석을 확보해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은 81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전체 의석의 157석만을 차지하게 됐다. 개헌안 발의선인 164석에서 7석 모자라다.


아베 정권이 개헌을 하려는 이유는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함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Korea


지난 1945년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연합군의 요구에 따라 헌법 제9조에 '무력 행사를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따라서 일본은 현재 방위를 담당하는 자위대만 있을 뿐 정식 군대는 없다. 


아베 정권은 헌법 제9조를 바꿔 군대를 가지려 하고 있다. 불과 74년 전까지 일본의 무자비한 무력 행사로 고통을 겪은 주변국이 일본의 개헌을 반대하는 이유다. 


일본이 군대를 가지게 되면 옛일이 되풀이될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가. 당시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는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일본이 군대를 가질 경우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 7가지를 소개한다. 


1. 위안부


인사이트일본군에 의해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 몸에 강제로 새겨진 문신 / artic.or.jp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성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위안소를 제도화해 운영했다. 


여기에는 아시아 각국의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갔고, 이들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 하루에 수십 또는 수백 명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성 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일본군은 당시 단순히 성관계를 가진 것뿐만이 아니라 구타, 흉기를 이용한 가해 등 피해 여성들에게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2. 강제 징용


인사이트(좌) Twitter 'CJ Entertainment', (우) MBC '무한도전'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국가총동원법'이란 이름으로 강제 징용을 시행했다. 현재 우리 정부가 추산하는 강제 동원 인구는 782만 명(중복 동원 포함)이다. 


1930년대 한반도 인구가 약 2,600만 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이들은 하루 12~17시간에 이르는 강제 노무에 시달리면서 모진 구타와 고문을 받아야 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홋카이도 유리바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 노역자들은 7천 명이 넘었는데 그 6년 사이 사망한 조선인은 127명에 달했다. 그만큼 징용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분명한 것은 이미 1930년 국제 노동 기구(ILO)에서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폐지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징용은 명백한 불법이었다. 


3. 731부대


인사이트YouTube '102 News'


일본은 1932년부터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비밀 생물전 연구개발 기관인 731부대를 운영했다. 


이곳에서는 수천 명의 수용자가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됐고 실험 대상은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심지어 임산부까지 동원돼 마취 없는 실험과 해부가 이뤄졌다. 


화학전을 대비한 생화학 실험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세균에 감염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관찰하기 위해 멀쩡한 사람에게 병균을 일부러 접종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인을 포함에 약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 난징 대학살


인사이트무카이 도시아키 소위와 노다 쓰요시 소위의 100인 참수 대결을 보도한 일본 도쿄니치니치 신문 / Wikipedia


중일 전쟁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다. 


약 6주 동안 일본군에 의한 학살과 강간이 자행됐고 이때 사망한 중국인은 약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학살 중에 '100인 학살 경쟁'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충격을 주고 있다. 


1937년 11월 30일 자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은 두 명의 일본군 소위가 누가 먼저 100인을 참살(斬殺) 하는지 시합을 겨뤘다고 보도했다. 


이 두 일본군 장교는 패망 이후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5. 죽음의 철도


인사이트버마 철도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된 노역자들 / BBC


실제 명칭은 '버마 철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기 위해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한 군사 철도다. 


일본군과 전쟁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건설된 이 철도에는 전쟁 포로 6만여 명과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약 20만 명의 노동자가 동원됐다. 


이들은 400km에 이르는 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질병과 부상, 영양실조 등의 원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약 11만 6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버마 철도가 죽음의 철도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다.  


6. 관동 대학살


인사이트학살한 한국인을 내려다 보는 자경단 / 한국근현대사사전


1923년 일본 관동지방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민심과 사회질서가 흐트러졌고 이런 상황에서 일본 민중 사이에서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싹텄다. 


일본은 이러한 혼란 상황을 막기 위해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일부 신문에는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는 가짜 기사가 실렸다. 


이에 일본인들은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을 학살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수수방관하며 거짓 정보를 더욱 조장하기도 했다. 


강효숙 원광대 사학과 교수 주장에 따르면 이때 죽은 조선인 수는 약 2만 3천 명에 달한다. 


7. 바탄 죽음의 행진


인사이트죽음의 행진 중 숨진 포로들 / Wikimedia Commons


1942년 4월 9일 필리핀 바탄반도에서는 죽음의 행진이 진행됐다. 


일본군은 7만 명에 이르는 미군과 필리핀군 포로를 강제로 행군하게 했다. 이는 마리벨레스에서 산페르난도까지로 그 길이가 무려 88km에 이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카파스부터 오도널 수용소까지 13km를 강제 행진하게 했다.


행진 과정에서 구타와 굶주림으로 낙오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총검에 찔려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행진 중에 사망한 인원은 7천 명에서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행진을 마치고 마지막에 수용소까지 도착한 인원이 5만 4천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