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 서울
  • 15 15℃ 인천
  • 13 13℃ 춘천
  • 10 10℃ 강릉
  • 15 15℃ 수원
  • 17 17℃ 청주
  • 17 17℃ 대전
  • 13 13℃ 전주
  • 17 17℃ 광주
  • 16 16℃ 대구
  • 15 15℃ 부산
  • 16 16℃ 제주

'일본군'은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의 몸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새겼다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한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의 증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인사이트 /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인사이트] 박아영 기자 = 일본의 경제 보복에 한국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맞서는 등 한일 관계가 점점 더 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이 불만을 품으면서부터 시작됐다.


2019년 최악의 한일 갈등도 결국은 일본 식민지배라는 뿌리 깊은 역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 가운데 일본군의 만행으로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채 살아가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의 증언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인사이트artic.or.jp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는 1920년 함경남도 풍산군에서 태어났다.


1933년 6월 3일, 고작 14살이었던 정 할머니는 부모님이 밭에 일하러 나간 사이 일본군 손에 끌려갔다.


손발이 꽁꽁 묶인 채 할머니가 도착한 곳은 파발리 경찰서였다. 그곳에서 경찰 8명은 할머니에게 옷을 벗으라 협박했고, 강하게 저항하자 입에 누더기를 물려 겁탈했다.


정 할머니는 반항하다가 경찰에게 눈을 맞아 3년간 할머니의 한쪽 시력을 잃기도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귀향' 


그 길로 14살 소녀였던 정 할머니는 혜산시 군부대 막사로 옮겨져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그곳엔 정 할머니 말고도 400여명의 소녀들이 있었다. 대부분 12살, 13살, 14살 등 20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었다.


400여명의 소녀들이 상대해야 하는 일본군은 약 5천명. 하루에 40명이 넘는 일본군이 정 할머니 방을 찾아왔다.


그러면서도 가끔 일본군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할머니의 몸을 지지기도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그해 8월 27일, 소녀 15명이 일본군들에게 못판 고문을 당해 죽는 일이 발생했다. 


한 소녀가 "우리가 왜 너희들을 상대해야 하냐. 우린 나라 없는 죄밖에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녀를 포함 15명은 300개 못이 박힌 판 위에 굴려졌고 온몸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일본군은 그들의 목을 칼로 벴고 시신을 땅에 묻기도 아깝다며 변소에 던지기도 했다.


정 할머니는 이들을 죽인 일본군의 이름도 똑똑히 기억한다. 니시하라 수비대 대대장, 야마모토 중대장, 가네야마상 소대장이다.


인사이트artic.or.jp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남은 소녀들은 오열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네야마 소대장은 "저 계집들이 사람 고기 못 먹어 운다"고 웃으면서 시신을 가마솥에 삶아 강제로 먹이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1937년 6월 15일 정 할머니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도주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붙잡혔다.


일본군은 도주를 시도한 소녀 12명의 입에 고무호스를 물려 배속에 물을 주입한 뒤 널빤지로 배를 눌러 다시 게워내게 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뼈까지 나갔다. 하지만 소녀들은 주동자가 누군지 입을 열지 않았고 일본군은 그런 소녀들을 철봉에 거꾸로 매달았다.


인사이트artic.or.jp


그리고 일본군은 바늘에 먹물을 묻혀 소녀들의 입안, 가슴, 배까지 문신을 낙서처럼 새겼다. 결국 그 자리에서 10명의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이날 새겨진 문신은 할머니의 몸에 한평생 남았다. 그리고 정 할머니는 이 모든 이야기를 힘겹게 털어놓으면서 말한다. 


"왜 아무런 죄 없는 우리 여성들을 데려다가 그렇게 했나"


정 할머니의 한이 사무친 물음에도 일본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오히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이미 다 끝났다고, 대법원 판결 때문에 외교적 갈등이 생긴 거라고 주장한다.


끝까지 일본이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밀어낸다면, 한일 관계는 결국 이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