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 개발하려 8년 동안 '방사선' 맞은 과학자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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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진민경 기자 = 수백 년 전 사람을 해부하지 않고 뼈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상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끊임 없는 연구와 노력 덕분에 현대에는 '엑스레이'를 통해 각종 질병을 수술 없이도 진단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학자의 목숨을 건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난 28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과학자 에디슨의 조수였던 클라렌스 달리(Clarence Dally)의 일생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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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895년 독일 과학자 빌헬름 뢴트겐 뷔르츠부르크대학 교수는 일반 가시광선과 달리 물체의 표면을 투과하는 'X선'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후 1896년 에디슨이 뢴트겐의 X선이 접목된 장치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때 그의 곁을 지켰던 조수가 클라렌스 달리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장치 발명에 매료된 달리는 형광 투시경을 발명하기 위해 수십차례 X선 촬영에 응했다.


손가락은 물론, 뇌 사진도 수백 차례 찍었다. 그러자 조금씩 그의 신체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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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더니 왼손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 변화가 일어났고, 얼굴 전체가 궤양으로 뒤덮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1902년 달리는 왼손과 팔꿈치에 이어 어깨까지 절단했다. 그러자 그는 오른손을 실험에 이용했다.


그 결과 그는 피폭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39세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바로 곁에서 조수의 죽음을 목격한 에디슨은 1903년 X선 연구를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지속적인 X선 노출을 반기지 않게 됐다.


다만 이런 희생 덕분에 발전하게 된 X선 기술은 현대에 와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공항세관 물품검사나 미술품 진위 감정 등이 이런 예에 속한다. 


인사이트에디슨과 클라렌스 달리 / Daily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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