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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일본은 '경찰권'을 빼앗자마자 조선인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지난 1910년 6월 24일 대한제국은 경찰권을 일본에 이양하고 난 후 그해 10월에는 국권까지 빼앗겨 식민통치를 받아야 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미스터션샤인'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일본은 한국 정부의 권한을 빠르고 치밀하게 빼앗아 갔다.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빼앗더니 1907년에는 군대를 해산시켰고, 1909년에 이르러서는 사법권마저 강탈했다. 


그리고 1910년 6월 24일 대한제국은 경찰권까지 피탈 당하고 만다.


대한제국이란 국호와 왕은 남아있었으나 더는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일본의 '꼭두각시'였다.


인사이트경성(서울) 제2헌병분대 / 온라인 커뮤니티


경찰권까지 빼앗은 일본은 빠르게 한일 병합을 진행해 나갔다. 그들은 거침이 없었고 결국 그해 10월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됐다. 


나라 잃은 슬픔과 분노가 차오르던 때 일본은 이를 진압하기 위한 새로운 경찰 제도를 마련했다.


일반 경찰이 아닌 군인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는 '헌병경찰제도'였다.


이들에게는 즉결처분권이 있었고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조선인들에게만 '태형'을 시행하기도 했다. 죄가 없어도 일본 헌병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몽둥이로 구타를 당했다. 


경찰이 일본에 넘어간 직후 조선인들은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일본의 강압 정치로 인해 쌓여왔던 민중의 불만은 결국 1919년 3·1 운동으로 터져 나왔고,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다. 


임시정부 수립 후 백범 김구는 초대 내무총장이었던 도산 안창호에게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김구의 부탁에 대한 안창호의 대답은 '경무국장(지금의 경찰청장)'직 위임이었다.


이후 경찰은 독립운동은 물론 6·25전쟁 등 국가의 위기 때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왔고 오늘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