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기념관
[인사이트] 진민경 기자 = 일제 강점기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어느덧 109년이 흘렀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소망했던 안 의사.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하얼빈 의거 직후 다음 해 3월 순국할 때까지의 안 의사 행적이 공개돼 이목이 쏠렸다.
지난달 28일 국가기록원은 1909년 10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5개월간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한 러시아 지역 신문 기사들을 공개했다.

사진 제공 = 국가기록원
해당 기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 우수리스크, 이르쿠츠크 등 러시아 지역 일간신문이 보도한 24건이다.
기사에서는 안 의사의 체포 과정과 심문, 사형 집행 등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조국에서 그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한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발행된 신문 '프리 아무리예'는 의거가 발생한 지 약 7일 뒤 하얼빈 의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기사에는 안 의사가 일본 영사관으로 압송돼 조사받던 중 했던 발언이 담겼다. 안 의사는 의거 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위엄 있는 태도로 모든 조사 과정에 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거 직후 러시아 헌병에 체포되는 안중근 / KBS1 '천상의 컬렉션'
또한 일본 정부가 안중근 의사 시신 매장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이와 관련된 기사도 당시 기사에 언급됐다.
우수리스크에서 발행된 신문 '우스리스카야 아크라이나'에서는 안 의사 순국 소식을 전하며 "사형이 집행된 뒤 관이 지역 기독교 묘지로 옮겨졌다"고 보도했다.
안 의사가 매장된 곳과 관련해 '기독교 묘지'와 같이 구체적인 언급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부디 안 의사와 같은 수많은 독립 운동가의 숭고한 희생 정신이 지금 우리를 있게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