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 오늘(24일), 권총으로 박정희 암살한 김재규가 사형당하기 전날 한 말

인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리 한 것이었다. 아무런 야심도 어떠한 욕심도 없었다"


1980년 오늘(24일) 유신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가 사형 당하기 약 7개월 전인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께. 서울 종로구 궁정도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다. 


수 발의 총성이 오고 간 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대통령 경호 실장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저격으로 암살당한 사건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해 암살한 김재규는 박 전 대통령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동기였다. 권력의 실세인 중앙정보부장까지 역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김재규가 대통령을 총으로 쏴 사살했다. 그는 체포 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한 일"이라며 "아무런 야심도, 어떠한 욕심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10·26사건은 하나의 혁명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김재규는 유언에서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라며 지금 이 시간이 "명예롭고 보람되고 즐겁다"라며 10·26사건의 목적이 '민주화'였다고 주장했다. 


인사이트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하고 유신정권을 끝낸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 엇갈리고 있다. 


당시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는 제4공화국 유신 독재 체제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항쟁을 일으켰고(부마항쟁), 계엄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가 행동에 나섰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재규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10·26사건이 권력 투쟁 속에서 벌어진 일에 지나지 않다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김재규가 자신보다 어리고 계급이 낮은 차지철에게 면박과 수모를 당하면서 이에 격분한 나머지 일으킨 일이고 그가 민주화를 운운하는 건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사이트국가기록원


그가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한 이유가 어찌 됐건 10·26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는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이때를 '서울의 봄'이라 부를 만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커졌던 때였다. 


김재규 자신이 불러온 이런한 변화를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사형 전 교도소 관계자에게 담긴 유언에서 당당함이 묻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 이미 나는 이겼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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