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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50대 男, 장기기증서 남긴채 음독자살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혐의로 조사를 받기에 앞서 A(57)씨는 경찰관에게 작은 꽃 화분과 함께 자신의 이름으로된 신체기증서를 건넸다.

음독자살 시도 50대가 남긴 화분

 

"경찰관 아저씨 이 화분 책상 위에 놓으면 좋을 거 같아 가져왔소."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혐의로 지난 23일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에 앞서 A(57)씨는 경찰관에게 작은 꽃 화분과 함께 자신의 이름으로된 신체기증서를 건넸다.

 

그런 직후 A씨는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나요?"고 묻는 경찰관 앞에서 감기약 병에 미리 담아온 농약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 27일 새벽 숨졌다.

 

A씨는 광주 서구 일대에서 종종 목격되곤 했다.

 

1t 트럭에 차곡차곡 폐지를 주워담고 빼곡히 주차된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A씨의 모습은 손수레에 폐지를 줍는 다른 노인의 모습과 사뭇 달라 쉽사리 잊히지 않는 기억을 행인들에게 남기곤 했다.

 

그런 그가 사고를 냈다.

 

지난 22일 혈중 알코올 농도 0.254% 만취 상태로 운전하며 후진하다 외제 덤프트럭을 들이받은 것이다.

 

놀란 A씨는 곧바로 도주했지만, 경찰에 붙잡혀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됐다.

 

외제 트럭은 앞범퍼가 부서져 500만원 가량의 수리비가 나왔다.

 

만취한 A씨는 집에 갈 차비조차 없어 경찰관에게 2만원을 빌려 귀가 후 다음날인 23일 오후 7시 40분께 다시 경찰서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다.

 

지난 2005년에도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내 면허가 취소돼 무면허 상태였던 A씨는 거짓 이름 대신 실명을 말해달라고 함께 담배를 피우며 자신을 설득하는 경찰관에게 전날 빌린 2만원을 되갚으며, 작은 꽃 화분을 선물이라며 건넸다.

 

그는 실명을 말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신체기증 증서를 경찰에게 건넸다.

 

경찰서 의자에 앉아 조사를 받기 앞서 A씨는 미리 가져온 감기약 병 5개, 연고 3개가 든 비닐봉지에서 감기약 한 병을 꺼내 마셨다.

 

그러고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감기약 병에는 농약이 들어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A씨의 휴대전화에는 세 사람에게 보낸 문자가 차례로 남아있었다.

 

A씨는 '공주'라는 이름으로 휴대전화 연락처에 저장한 딸에게 "곧 생일인데 당분간 못 볼거 같아 미리 축하한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이혼한 전처에게는 "여보 보고싶고, 사랑한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아들에게는 "못난 아빠를 용서하거라"는 문자를 보냈다.

 

A씨는 약 17년 전 이혼 후 혼자 살았다.  

 

폐지를 주우며 광주 서구의 한 사람 없는 집에 스며들어가 쥐 죽은 듯이 살았다.

 

그런 그는 어렵사리 폐지를 모은 돈으로 산 술을 입에서 거의 떼지 않고 살았다.

 

가끔은 고달픈 현실에서 도피하게 돕는 친구였던 술이 이제는 그의 발을 잡았다.

 

경찰은 A씨가 다시 음주사고를 낸 것에 낙담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마지막 가는 길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며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는 한 생을 살았지만, 살아생전 약속대로 A씨의 신체는 광주의 한 대학병원에 기증돼 의료발전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A씨를 조사한 경찰관은 만감이 교차한 듯 사무실 한 쪽에 밀어놓은 꽃 화분을 다시 책상에 가져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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