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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환자의 아내가 내민 카네이션을 본 이국종 교수는 무너져내렸다"

의식을 잃은 것은 물론 혈압도 잡히지 않는 중증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날아간 이 교수는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뉴스1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왜 환자분은 같이 안 오셨어요?"


자신이 혼신의 힘을 바쳐 살려낸 환자. 아내는 왜 홀로 이국종 교수의 진료실을 찾았을까.


지난 2011년 어느 날 밤, 이 교수는 북방한계선 인근 백령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선에서 일하던 환자는 스크루에 엉켜 들어간 동아줄에 온몸의 뼈와 내장이 부서졌다고 했다.


의식을 잃은 것은 물론 혈압도 잡히지 않는 중증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날아간 이 교수는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기관삽관을 하고, 중심 정맥을 잡았다. 지참한 수액과 혈액을 쏟아부으며 환자의 목숨을 붙들어놨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KT


환자는 위급한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수술실에 들어가 확인한 신체 내부에는 성한 장기가 없었다.


두 동강난 신장을 비롯한 장기를 이어 붙이는 대수술이 시작됐다. 그리고 여러 번의 재수술을 거쳐 환자는 살았다.


이 교수를 포함한 의료진의 희생과 노력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던 환자는 모든 처치를 견뎌내고 회복해 백령도로 돌아갔다.


그런데 스승의 날 그렇게 살려낸 환자의 아내가 홀로 진료실을 찾았으니 이 교수는 의아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인사를 한 뒤 붉은 카네이션이 든 꽃바구니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고 묻자 "애들 아빠가 교수님께는 꼭 인사드려야 한다고 할 것 같아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꽃을 받아든 이 교수는 환자의 안부를 물었다. 그 순간 아내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뉴스1


"애들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찰나였지만 이 교수는 자신의 치료법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되돌아보며 죽음의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내 입에서는 또다시 뜻밖의 답변이 나왔다.


이 교수의 치료를 받고 건강해진 그가 두 달 전 미역을 딴다며 바다로 나갔다가 큰 파도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데려온 환자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 교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아내는 "애들 아빠가 살아있을 때 항상 교수님 이야기를 했다"며 "감사하다고. 이 얘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인사한 뒤 진료실을 나갔다.


이 교수는 다음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홀로 진료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은 환자들을 어떻게 진료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가 살리려 애쓴 환자를 삼켜버린 서해의 파도. 이 교수는 이날 아내가 두고 간 카네이션만을 무겁게 바라봤다.


이 교수는 자신의 책 '골든 아워'에서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이제 다시는 식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그의 독백에서 깊은 안타까움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