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립운동가가 '일본X' 소리 들으면서도 '기모노' 입고 돌아다닌 이유
독립 운동가 故 김 마리아 선생이 독립운동 당시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다닌 이유가 최근 다시금 재조명됐다.
[인사이트] 김남하 기자 = 거국적인 3·1운동을 한 달 앞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기모노를 입고 다니던 독립 운동가가 있다.
지금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의 자랑스러운 여성 독립운동가 故 김 마리아 선생이다.
독립운동가인 그가 한복이 아닌 눈에 띌 만큼 커다란 기모노를 입고 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7일 KBS1 '역사저널 그날'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김 마리아 여사를 재조명했다.
앞서 1919년 2월,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김 선생은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2·8 독립선언에 깊은 자극을 받았다.
이에 도쿄에서 배포된 독립선언문을 조국 땅에도 뿌리겠다고 다짐했고 3·1 운동을 앞두고 독립운동의 뜻을 품은 채 비밀리에 조국으로 귀국했다.
당시 일제와의 합방 이후 일본의 감시와 공포정치는 극에 달해 있었다. 일제 경찰의 감시 아래 독립운동은 커녕 운동 조직 모임, 독립선언서 배포조차 쉽지 않았다.
이에 김 선생이 생각한 아이디어는 여태껏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이었다.
바로 일본 여성들의 전통 의복인 기모노에 독립선언문을 숨기는 것. 일본의 기모노는 한복에 비해 탈의가 쉽지 않았다.
기모노의 중심을 잡아주고 허리를 여며주는 역할을 하는 '오비'가 최대 약 4m에 달해 풀기는 매우 어려웠다.
또한 오비를 푼다는 건 여성의 속옷이 훤히 드러나게 하는,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김 선생은 품속에 대한독립의 뜻이 담긴 독립선언서를 깊이 품고 꽁꽁 싸맨 것이다.
그 누구도 김 선생의 기모노 속에 독립선언서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하지 않았을까?
김 선생의 기모노 차림을 본 국민들은 그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날렸으나 그는 독립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김 선생은 일본에서부터 들여온 독립선언문 십 여장을 여성계, 교육계, 기독교계, 천도교계 등의 지도자들에게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김 선생의 값진 노력 덕에 3·1 운동은 무사히 치러졌다. 그러나 김 선생은 3·1 운동 당일 일제에 배후로 몰려 체포, 감금당했다.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난 김 선생은 세상을 뜨기 전까지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평생을 독립운동에 힘썼다.
김 선생의 독립을 위한 노력과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값진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