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 서울
  • 10 10℃ 인천
  • 10 10℃ 춘천
  • 10 10℃ 강릉
  • 10 10℃ 수원
  • 8 8℃ 청주
  • 8 8℃ 대전
  • 9 9℃ 전주
  • 9 9℃ 광주
  • 8 8℃ 대구
  • 12 12℃ 부산
  • 14 14℃ 제주

자기들이 독도 '강치' 멸종시켜놓고 한국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

1900년대 초반 독도에 들어와 강치 4만여 마리를 멸종시켰음에도 사실을 은폐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인사이트텀블벅 'remember'


[인사이트] 진민경 기자 = 일본 정부가 독도에 살던 강치를 대량 학살했던 정황을 은폐하고 그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방송된 EBS '독도채널e'에서는 100여 년 전 독도 앞바다에서 쉽게 볼 수 있던 '강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진짜 이유를 파헤쳤다.


강치는 '가제' 또는 '가지'라 불리던 바다사자의 일종이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 풍부한 먹거리가 넘쳤던 독도는 1900년대 초반 이곳에 살던 강치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일본인 어부들이 독도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강치들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강치 사냥으로 얻게 되는 기름과 뼈, 피, 고기, 가죽이 전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 어부들은 욕심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는 독도를 일본 자국으로 편입시켜 강치 사냥을 더욱 활성화하려고까지 했다.


실제 1904년 나카이 요자부로는 일본 정부에 '량코토 영토 편입 대하원'이라는 문서를 통해 "강치 사업을 끝까지 보전할 수 있도록 10년간 제게 독도를 대여해달라"고 썼다.


해당 문서를 검토한 일본 정무국장 야마자 엔지로는 "러일전쟁이 한창인 지금이야말로 영토 편입이 필요하다.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고 해저전선을 설치하면 적(러시아)의 함대를 감시하기 좋지 않겠는가"라며 그의 말을 들어줬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결국 1905년 1월 28일 일본정부결정 청원문서에 이렇게 기록됐다.


"이 섬은 타국이 점령한 적 없었다. 1903년 일본인 나카이 요자부로가 강치잡이를 한 것이 국제법상 점령의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일본의 영토이며 이름을 '죽도'로 한다"


이후 1905년 11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06년 3월에야 대한제국이 일본의 독도 강탈을 알게 되면서 국제 사회에 공식 항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일본 어부들 손에 독도에 있던 강치 4만여 마리의 씨가 말랐다.


일본 시마네현 어부 이구치 류타는 "매년 강치 어획량은 암컷 50마리, 수컷 700마리, 새끼 50마리로 제한했다"면서 "하지만 나카이 요자부로는 한 철에 암컷만 650마리를 남획했는데 그 후 어획량은 몇 마리가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또한 일본인 작가 이즈미 마사히코는 '독도 비사'를 통해 "죽은 바다사자의 썩는 냄새가 울릉도까지 흘러왔고 이는 어로의 영역을 넘은 광기의 살육이 아닐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증거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현재 일본 정부는 잔인한 강치 학살을 아름다운 동화로 미화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교육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시마네현 출신인 전직 초등학교 교사 스기하라 유미코가 집필해 전국에 배포된 동화 '메치가 있던 섬'에서 독도가 원래 일본 땅이며, 한국 어부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강치가 멸종됐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본 국제 사회의 반응은 싸늘한 상황이다.


미국 코네티컷대 사학과 교수 알렉시스 더든은 "1904년 나카이 요자부로라는 일본인 어부가 독도를 사유 어장으로 다룰 목적으로 임차권을 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며 "그 결과 불행히도 독도의 강치는 멸종했다"고 지적했다.


YouTube 'EBSCulture'